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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와 구로사와도 개방하라
2004-01-05

2004년부터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4차 개방이 시행되었다. 98년부터 이루어진 1, 2, 3차 개방 결과 일본 대중문화의 파괴력이 생각보다 적어서인지, 의외로 어느 때보다 개방 폭이 큰 이번 개방에 대해서는 큰 논란이 없이 지나가는 듯하다(애니메이션 분야가 논란이 되기는 했는데, 결국 개방 유예로 결론이 났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유독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서만 폐쇄적인 입장을 취해온 것은 아무리 ‘역사적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너무 신중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막말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라는 측면에서나 산업적 파괴력에서나(심지어 못마땅하기로 따지더라도) 일본은 미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 아닌가? 물론 개방에 접근하는 정부의 태도나 시기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의견이 있고 그 비판에 대해 공감가는 부분 역시 없지는 않지만, 이 글의 논지와는 거리가 있으니 더이상 따지지 않기로 하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혹시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사진),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들이 왜 DVD로 출시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 역시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연하게 한국의 DVD 시장이 작아서 일본쪽에서 수익성을 두고 주판알을 튀기고 있거나 한국쪽 파트너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씨네21> 기자 한분이 전화로, ‘영화가 완전히 개방이 되었으면, 일본 고전영화의 DVD 출시도 가능해지는 거냐’고 물어왔다. 아차 싶어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더니 ‘비디오 부문은 영화 및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개방과 연계하여 이번 추가 개방대상 영화와 추후 발표될 극장용 애니메이션 부문의 추가 개방범위의 작품 중 국내에서 상영된 작품의 국내출시가 허용된다’라고 나와 있다.

요컨대 DVD나 비디오로 출시될 수 있는 일본영화는 상영관에서 상영된 영화에 한한다는 것이다. 즉 오즈나 구로사와의 영화도 극장에서 개봉해야 비디오나 DVD 출시가 허용된다는 것인데, 이건 거의 우롱의 수준이다. 말이 좋아 허용이지 요즘 같은 때에 어느 수입사가 40∼50년대 일본의 철지난 영화를 수입해서 극장에 개봉하려 하겠으며, 혹시 개봉하고자 해도 어느 극장이 상영해주겠느냐 말이다. 비단 구로사와나 오즈나 미조구치뿐이랴. 100년이 넘는 일본 영화사의 수많은 걸작들을 DVD나 비디오로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일본의 온갖 대중문화 산물들을 보게 되는 상황에서, 정작 가장 높은 문화적 성취들은 감상할 수 없는 기막힌 역설적 상황이라고나 할까. 정책담당자들에게 악의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이는 명백한 정책상의 실수로 보인다. 혹시 DVD나 비디오 시장에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일본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이 이루어질까 걱정하는 사려 깊은 고민의 결과라면, 그러한 ‘배려’는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러한 무분별한 유입이 우려된다면, 상영관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에 해당할 법한 영화의 DVD나 비디오 출시는 단계적으로 허용한다든지 하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정책당국의 성의있는 대응을 기대한다.

조준형/ 경희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