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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전문 조감독이야!
2001-05-30

<수취인불명> 조감독 허성욱

1975년생·서울예전 사진과, 상명대 영화학과 졸업

<자카르타> 연출부·<실제상황> 시퀀스 감독·<수취인불명> 조감독

나, 허성욱은 조감독이다.

엄살부리는 건 아닌데, 조감독 일이 좀 많은 게 아니다. 헌팅에 섭외에 현장 진행에. <수취인불명>의 개 섭외를 했다. 개장수(조재현)가

개가 끄는 밧줄에 감겨 죽는,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하는 장면. 20마리 정도면 사람이 딸려 올라가지 않을까 해서 20마리를 구했다. 조련사와

개주인이 조언하기를, 그중 수놈이 두 마리가 있으면 싸움 난단다. 암놈을 다 구할 수 없어서 수놈이 두 마리 이상 되었다. 정말 그랬다. 개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그 장면은 다음 날로 넘겨야 했다. 수놈을 빼고나니 스펙터클이 부족했다. 아, 통한의 눈물. 20마리가 끄는 장관을 내가 흐트러뜨린

게 아닌가, 하고. 실제로는 20마리가 사람을 끌어올리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니, 20마리라는 건 감(感)이다. 영화적 비약. 그런데

<호기심 천국>에서 20마리로는 안 올라간다고 하면 어쩔 거야. 그런 설정도 꼼꼼하게 점검했어야 하는데. 그것도 조감독의 몫인데.

내세울 만한 일이 없네. 참, 그러고보니 헌팅하면서 내가 혁혁한 공을 세운 일이 있지. 미군부대지역, 의정부, 동두천을 열심히 훑으며 적절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런데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99년 12월31일, 날짜까지 기억하지), 친구와 방에만 뒹굴 수는 없지 하며 차를

몰고 평택쪽으로 놀러갔다. 가서 보니 이쪽 풍경이 <수취인불명>의 그곳으로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김기덕 감독에게 추천을 했다.

그리고 평택이 최종 촬영지로 낙찰되었고.

<수취인불명>에서는

워낙 스케줄이 바쁘게 돌아가다보니 A팀은 촬영하고 B팀은 다른 데서 촬영을 준비하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28회 촬영을 초과없이 끝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현장진행이 조감독의 가장 큰 몫이다. 촬영계획을 세우고 합리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앞 촬영을 못하게 되어 크레인숏을 찍게

되었는데 크레인이 안 왔을 때, 크레인숏까진 한참이나 남았는데 크레인이 와서 대기중일 때 모두 조감독을 쳐다본다. 절묘한 타이밍, 그게 웬만한

경력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이 많은 일들을 세분화해서 체계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나리오 각색, 윤색, 트리트먼트, 자료조사, 시작부터

모든 일에 다 매달리다보니 연출에서 어시스트해야 할 걸 놓치는 건 아닌가. 연출부에게 크리에이티브한 면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하는 일에 대한

전문화가 필요하다. 듣자하니 미국에서는 오늘 촬영분량만 체크하는 사람, 배우들 스케줄만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조감독으로서는 나이가 어린 편이다. 하지만 연출부 사람들이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어리다고 힘들진

않았다. 그들은 전문가들이다. 연출부에서 나눈 일들, 의상, 소품, 스케줄 분야에서 그들은 전문가다.

그리고 나, 허성욱은 전문 조감독이다.

아니, 되려고 한다. 이메일 주소는 cockino@dreamwiz.com 이거 꼭 나가야 한다. 전문 조감독하겠다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든데,

뜻을 같이하는 ‘그 사람’을 찾고 싶다. 조감독은 연출하려는 사람이 거쳐가는 것 아냐, 라고 물으신다면, 음… <씨네21> 스탭

생존권 대담에서 오기민 PD가 “10편 이상 참여한 조감독 한 사람만 있어도 현장은 달라진다”는 말도 하지 않았나. 전문 조감독이 필요하단

건 일단 촬영현장에 들어와 보면 안다. 스탭의 대우와 조건과 맞물려서 고민을 했다. 실상 전문 스탭은 얼마나 있나, 하는 힐책에 대한 답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참, 지금 그 뜻을 공포하니 좀 쑥스럽다. “너 잘했어?” 하고 속에서 말한다. 조감독으로 일하며 능력을 쌓다보면 당당해지지

않을까. 나, 허성욱은 전문 조감독이다, 하고.

글 구둘래|객원기자 사진 오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