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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제기!! 국가주의를 정면 공격한다나! <실미도>

이의제기! <실미도>가 국가주의를 정면 공격한 영화라고?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실미도>가 ‘국가주의에 희생당한 이들의 비극으로 국가주의를 정면 공격하는 영화’라니? <실미도>는 강우석 감독을 비롯하여 극중인물 어느 누구도 국가주의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중앙정보부가 국가인 기형적인 국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가를 열망한다는 점에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영화이다. 또한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주체 호명(형성)’이라는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인 분석은 영화의 조악한 틈새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을 듯하다(혹자는 폄하의 의미로 <해안선>을 언급하였지만, <해안선>은 조직과 개인의 문제의식을 훨씬 선명하고 강렬하게 보여준 영화로, <실미도>와 견줄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면 감동의 실체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류를 보면서 ‘이제 우리 사회도 많이 민주화가 되었구먼…’ 하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심정. 둘째는 복고풍의 화면을 보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든 이성적인 판단에 앞서 왠지 짠한 향수에 젖는 못 말리는 성적 취향이다. 그런데 <올드보이>의 ‘이우진’처럼 한번 물어보자. “왜 지금까지 감추어왔는가가 아니라 왜 지금 말하느냐를 물어야죠….”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중요한 단어는 ‘이제는’이다. ‘이제’ 그것들은 더이상 비밀도 아니거니와 체제를 위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의 정권이 과거 정권과 다르다는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밝혀내지기도 한다. 노태우 정권 때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가 열렸고, 김영삼 정권 때 노태우 비자금이 나왔으며, 김대중 정권 초기에 경제환난 청문회가 열렸다. 심지어 일년 전 대선 당시 기밀이 사방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판에, 유장하기도 하여라! 어언 박정희 정권 당시의 일이 무슨 대단한 비급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폭로한들 지금의 체제에 무슨 ‘기-스’를 낸단 말인가? 고로 이 영화를 보고 첫 번째류의 감회에 젖었다면 당신은 속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로 이 영화에 눈시울을 붉혔다면…. 그건 전적으로 성적 취향의 자유이다. 즉 이 영화는 정치적 의미는 없고 정서적 의미만 있는 신파극인데, 영화의 정치적 이념을 굳이 밝히라면 ‘포퓔리슴’이다.

<실미도>의 내러티브는 <유령>과 <블루>의 내러티브를 6:4의 비율로 섞으면 나온다. 게다가 화면은 <유령>과 <블루>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상하지 않은가? <유령>과 <블루>는 화면은 상당히 괜찮지만, 내러티브가 허술하다는 혹평을 받았던 영화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실미도>는 화면은 좀 촌스럽지만, 내러티브에서 진정성이 묻어나온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걸까? 그 진정성이 과연 영화 안에 담지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실화’라는 영화 외적 이유 때문인가? 사실 ‘진짜 이야기’라고 하는 데에 토를 달기는 쉽지 않다(이는 마치 토론에서 밀릴 때, 자신의 논거로 외부의 권위를 빌려오는 것과 같다). 더욱이 그것이 꽤나 부채감을 자극하는 역사일 때는 ‘실미도를 기억하자!’라는 구호로 정리되기가 십상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국가와 민족…’ 운운하는 자막까지 넣어가며 이 진실과 상흔의 힘을 빌리고자 한 혐의를 그대로 드러낸다.

사정은 대략 이러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번번이 내러티브의 부실로 자빠지자, ‘내러티브의 사실성’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런데 그 ‘사실성’이 ‘내러티브 안에 스며드는 리얼리티’로 고민된 것이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지붕으로 얹혀지는 손쉬운 방법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기본 가닥은 <유령>이나 <블루>로 가되 (더 잘 찍을 필요도 없다), 그런 이야기가 실화인 것을 찾을 것! 물론 효과는 상당하다. 어찌됐든 부조리한 역사적 사실과 31명의 실존인물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뭔가를 반성해야 할 것 같고, 뭔가에 감동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획으로 치자면 묘수이다. 그러나 연출로 치자면 꼼수이다. ‘성공한 블록버스터를 기획하기’는 일단 성공하였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적 가치로 승부해야지 역사적 진실의 육중한 무게를 빌려와 의미화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왕따였던 루돌프에게 썰매끌기라는 직책을 하사하여 그를 인기맨으로 급부상시키는 산타의 기획력보다는 루돌프 스스로 강해져서 사슴들 사이에서 인정받도록 키워내는 참사랑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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