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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바람 난 타이어
2001-05-31

여성의 섹시함 강조한 두 편의 타이어 CF

블랙 제작연도 2001 광고주 한국타이어 제품명 블랙버드V 대행사 웰콤 제작사

엘로우프로덕션 감독 오민호

미녀와 타이어 CF의 상관관계가 오랜 전통을 갖고 있을 것이라 예단했다. 남성을 주요 목표소비자로 삼고 있는 타이어 광고의 속성상, 남자들로

북적거리는 술집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여자사진 일색의 달력이나 주류 광고와 왠지 특별한 친분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이어 광고가

미녀를 내세워 경쟁을 벌이기는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상기해보니 그동안 타이어 광고에서 속도감과 힘을 강조해온 주체는 최불암, 서유석,

최민식 같은 중후한 남성모델이 많았다.

한국타이어의 블랙버드V 광고가 송윤아에 이어 한채영을, 금호타이어의 솔루스스포츠 광고가 엄정화를 모델로 기용해 가열찬 경쟁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섹시함을 이미지 포인트로 삼은 두 미인이 남성의 세계에 진입한 것은 제품 속성에서 비롯한다. 여느 제품과 마찬가지로 타이어 역시 업그레이드의

길을 부단히 밟고 있는 품목. 현재는 스포츠 드라이빙의 개념을 차용한 고성능타이어가 주요 제품군으로 부상해 있다. 일반승용차에 장착하더라도

스포츠카를 모는 듯한 승차감과 속도감을 전해준다는 게 이 타이어의 특징. 블랙버드V와 솔루스스포츠는 안정성과 더불어 날렵한 운전의 맛을 선호하는

20, 30대 젊은층을 주요 소구대상으로 삼으면서 제품의 특징과 타깃의 눈높이에 두루두루 맞는 여성모델에 눈길을 돌렸다. 신사가 금발을 좋아하듯

타이어 광고도 섹시미녀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제품의 광고가 왜 하필 섹스어필하는 여성을 공통적인 무기로 삼았느냐에 대해서는 뚜렷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여성모델에 대한 1차적 관점은 늘 섹시함에서 출발하게 마련이란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블랙버드V 대 솔루스스포츠’의 경쟁양상이 흥미로운 이유는 솔루스스포츠가 미녀모델로 맞불작전을 구사하고 비교광고의 성격을 지닌 메시지로 블랙버드V에

한판승부를 청했기 때문. 블랙버드V 광고가 시리즈광고의 누적효과를 차곡차곡 챙겨가고 있는 가운데 솔루스스포츠는 갑자기 V보다 빠른 Z가 나타났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먼저 블랙버드V의 새 광고를 들여다보면 이미 타이어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터를 잡은 브랜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배경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체코 프라하. ‘휙’ 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블랙버드V가 습기를 머금은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좁은 골목길을 자유자재로 회전하며 달리는

이 타이어는 손을 어깨춤에 댄 채 도도하게 서 있는 한채영의 다리사이에서 가볍게 급제동한다. 달리는 타이어 앞에 간혹 장애물도 나타난다. 뭉게구름처럼

공중을 부유하는 비눗방울, 민들레씨앗 등 한없이 연약해보이는 소재들이 그것. 그러나 블랙버드V는 비눗방울조차 건드리지 않는다. 그만큼 안정성과

제동력이 탁월한 제품임을 보여주고 있다.

솔루스 제작연도 2001 광고주 금호타이어 제품명 솔루스스포츠 대행사

버튼컴 제작사 IT프로덕션 감독 정창주

이번 광고는 전편에 비해 좀더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자랑하는 길을 택했다. 전작에선 송윤아가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과시하며 ‘V가 아니면 달리지 마’라는 도발적인 대사를 들려줬다. 이번에도 ‘V가 아니면 달리지 말라’라는 곱씹을수록 오만(?)하기

그지없는 카피는 그대로 사용됐다. 그러나 새 모델인 한채영은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광고의 여러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로 제구실을 담당했다.

송윤아에 비해 비중은 작아졌지만 이미지는 진일보했다.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꼿꼿한 자세로 타이어를 기다리는 한채영의 자태는 아래위로 여성의 몸매를

훑고 싶은 호기심어린 남성의 시선을 제압하고 남을 만큼 위풍당당하다.

그런가하면 솔루스스포츠는 제품명을 숨긴 채 신제품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티저 광고에서 ‘V보다 빠르다’, ‘Z가 온다’라는 의미심장한 카피를

연달아 사용했다. 비주얼은 자동차의 속도계. 계기판의 바늘은 시속 200km대로 치솟는다. ‘부릉부릉’ 파워를 자랑하는 엔진소리가 귓전을 자극한다.

오픈카에 탄 채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엄정화의 한마디는 ‘따라오지 마’다. 엄정화도 역시 자신만만한 명령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맛보기였고 다음번부터 엄정화는 ‘퀸 오브 카리스마’의 매력을 본격 드러낼 예정이다.

이 광고는 언뜻 블랙버드V를 한수 아래로 취급한 듯 보인다. 솔루스스포츠는 Z개념의 타이어로 보이는데 “V보다 빠르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블랙버드V쪽은 이 광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다. “동급제품도 아니면서 왜 V를 걸고넘어져 상대사 제품에 대해 비방의

뉘앙스를 풍기느냐”며 반발하고 있는 것. 소비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불공정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V와 Z는 타이어의 속도등급을 말하는데 솔루스스포츠 광고에서 알려주듯 Z가 한 등급 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속도등급이 타이어의 우열을 논하는

잣대는 아니다. 또 소비자의 타이어 선택기준이 최고속도를 얼마 낼 수 있느냐에만 달려 있지도 않다. 블랙버드V쪽이 반발할 만도 한 것이다.

그러나 타이어가 한번 잘못 구매하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고관여 제품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다지 정색해 반응할 일은 아닌 듯 보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좋다는 식의 경쟁은 옳지 않지만 이번 광고는 정도를 넘지 않는 장고 끝의 묘수였다. 타이어 시장의 리딩브랜드인

블랙버드V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는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뇌리에 새 개념을 창출하기 위한 좀더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 광고는

블랙버드CF에 대한 관심마저 동시에 유도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솔루스스포츠쪽은 “V와 Z의 차이를 얘기했을 뿐 블랙버드V를 겨냥한 것은

아니니 곡해하지 말라”라고 얘기한다. 얄밉지만 굳이 따질 구석도 없는 소리다.

조재원|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