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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특별기고 [3] - 최초에 아버지와 딸이 있었다
2004-02-05

최초에 아버지와 딸이 있었다

우주적 재난영화 시리즈 가운데 가장 최근작인 미미 레더의 <딥 임팩트>사진에서 실제적 사물은 지구와 충돌해 모든 생명체를 2년 동안 절멸시켜버릴 거대한 혜성이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지구는 핵무기를 싣고서 혜성으로 향한 우주비행사들의 영웅적 자살 행위 덕분에 구원받고, 오직 혜성의 한 조각만이 뉴욕 동부 해안에 떨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수백 야드나 되는 거대한 해일이 뉴욕, 워싱턴을 포함한 미국의 북동 해안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한다. 또한 이 혜성은 예상치 못했던 커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젊고, 명백히 신경증적이며, 성적으로 비활동적인 TV리포터와 어머니와 이혼하고, 딸과 동갑인 젊은 여자와 결혼한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그 예상치 못했던 커플을 이룬다.

이 영화는 확실히 전(proto)-근친적인 부녀관계에 대한 드라마이다. 애인이 없고, 아버지에 대해 외상적으로 고착되었으며 아버지의 재혼에 당황해하며, 자신의 동갑내기인 여성 때문에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여주인공의 자기파괴적인 분노가 위협적인 혜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통령은 다가오는 파국을 공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그녀에게 처음 질문을 하도록 허락하는 특권을 주는 식으로 외설적인 실제의 아버지에 대한 이상적 대당으로, 보살펴주는 아버지상으로 행동한다(게다가 대통령에게는 영부인도 없는 듯하다). 혜성과 부권적 권위의 어둡고 외설적인 이면 사이의 연결은 여주인공이 대통령과 접촉하는 방식을 통해 명확해진다.

그녀는 조사를 진행하다가 ‘엘르’(elle)와 연결되어 있는 금융 스캔들을 발견하게 된다. 여주인공이 처음 생각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 본인이 개입되어 있는 섹스 스캔들이다. 즉 ‘그 여자’(elle)란 대통령의 정부를 가리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뒤에 알게 된 진실은 ‘E.L.E’란 생명체의 전멸을 이끌 수도 있는 재난에 대해 취해질 비상수단에 대한 암호명이었으며, 정부는 그 대재앙으로부터 100만명의 미국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대한 지하 피난처를 건설하는 데 비밀스럽게 비용을 지출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혜성은 아버지의 배신(infidelity)에 대한 은유적 대체물이 된다. 그녀의 외설적 아버지가 그녀 대신 다른 젊은 여성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맞이한 딸의 리비도적 파국에 대한 대체물인 것이다. 그 때문에 전 지구적 재난은 아버지의 젊은 부인이 그를 버리고, 아버지는 (본래 부인, 즉 여주인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딸에게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움직이는 기계가 된다.

영화의 절정은 해변의 호화스러운 집에서 홀로 해일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딸이 재회하는 신이다. 그녀는 해안선을 따라 걷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화해를 청하고는 조용히 해일을 기다리며 포옹한다. 해일이 다가와, 이미 그 커다란 그림자를 그들 위로 드리웠을 때, 그녀는 마치 아버지에게서 보호라도 구하려는 듯 나지막하게 ‘아빠’라고 울먹이며 더 가까이 다가서고, 이 장면에서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버지의 품속에서 보호받던 어린 여자아이였을 때의 모습을 복원시킨다. 그리고선 곧바로 그들 모두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 이 신에서 여주인공의 무력함과 약한 모습에 속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녀는 영화 내러티브의 바닥에 깔려 있는 리비도적 기계장치 속에서 줄을 잡아당기며 조종하는 사악한 요정이며, 보호해주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 신은 그녀의 궁극의 소망이 실현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금지된 혹성> 정반대편 극단에 위치하게 된다. 두 경우 모두 근친적 부녀관계를 다루지만, <금지된 혹성>에서는 파괴적 괴물이 아버지의 근친적 죽음-소망을 물질화시키는 반면, <딥 임팩트>에서는 딸의 근친적 죽음-소망이 파괴적 괴물을 물질화한다. 끌어안고 있는 딸과 아버지를 쓸어가는 거대한 파도가 있는 해안은 (파도에 해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커플이 등장하는 프레드 진네만의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유명한) 일반적인 할리우드영화의 모티브와 반대로 읽을 수 있다. <딥 임팩트>에서 커플은 진정 치명적인 근친 커플이라서 작은 해안에서 적당히 쳐대는 파도가 아니라, 거대하며 살인적 해일이 되는 것이다.

이드-기계, 욕망과 판타지의 물질화 ‘되기’

그와 함께 난 이 실제적 사물의 특정한 버전들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공간으로서의 사물(성스러운/금지된 지역)에서 상징계와 실제계 사이의 거리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물질화된다는 것이다(혹은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의 용어를 쓰자면, 우리의 직관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하는 지대로, 무한히 신성한 이성을 나타낼 뿐인 사물들의 상태가 되는 지대이다).

실제적 사물이 우리의 내밀한 판타지를 직접 물질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지닌 이드-기계(id-machine)로 나타나는 것은 훌륭할 것까지는 없지만, 오랜 계보가 있다. 영화에서 그 계보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기본 이야기 구조를 머나먼 행성으로 옮겨놓은 프레드 윌콕스의 <금지된 혹성>으로 시작한다. 즉, 다른 남자라고는 만나본 적 없는 딸과 외딴섬에서 홀로 살고 있는 아버지가 있는데, 탐험대가 침입해 들어오면서 그 평화는 깨진다. <금지된 혹성>사진에서 미치광이 천재 과학자는 그의 딸과 단둘이 살고 있는데, 우주 여행자들이 그 행성에 도착하며 평화가 깨지는 것이다. 곧, 보이지 않는 괴물이 공격하기 시작하고, 영화의 끝부분에 이르러서 이 괴물은 근친적 평화를 깨뜨린 침입자들에 대한 아버지의 파괴적 충동이 물질화된 것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소급적으로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의 템페스트 또한 부권적 초자아의 분노가 물질화된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스스로는 알지 못하지만, 파괴적인 괴물을 만들어내는 이드-기계는 이 머나먼 행성의 표면 아래 작동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이며, 그 메커니즘은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물질화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고, 바로 그 기계 때문에 자멸한 어떤 문명의 신비로운 잔여물이다. 여기서 이드-기계는 프로이트적인 리비도의 문맥에 자리잡는다. 이드-기계가 만들어내는 괴물들은 원시 아버지가 딸과의 공생을 위협하는 다른 남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근친적 파괴 충동을 실현한 것이다.

이드-기계라는 모티브의 궁극적 변주는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사진)가 될 것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에 기초한 이 영화에서 실제적 사물은 성적 관계라는 교착상태와 연관되어 있다. <솔라리스>는 새로 발견된 행성인 솔라리스에 보내진 우주선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과학자들이 미쳐버리거나, 환각에 빠진 채 자살하는 등)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우주국 심리학자 켈빈의 이야기이다. 솔라리스라는 행성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때론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뿐만 아니라 거대한 아이의 몸이나 인간의 건축물 등과 같이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을 흉내내어 만들기도 하는 액체 표면을 지녔다. 행성과 의사소통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가 실패하기는 하지만, 과학자들은 솔라리스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어내는 거대한 두뇌라고 가정한다.

켈빈이 도착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켈빈은 자신의 침대 옆에 누워 있는, 자신의 사별한 부인 하리를 발견한다(하리는 몇년 전 켈빈이 그녀를 떠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켈빈은 하리를 떼어내려 온갖 시도를 하지만 비참히 실패하고 만다(로켓에 하리를 태워보내지만, 그 다음날 다시 물질화되어 돌아와 있다). 켈빈은 그녀의 조직을 검사하던 중, 그녀가 보통의 인간과 같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정한 미시적 레벨 이하로 보자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공백일 뿐인 것이다. 결국 켈빈은 하리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외상적 판타지가 실현되어 나타난 것임을 깨닫는다. 이로써 하리의 기억에 존재하는 이상한 갭에 대한 수수께끼가 설명된다. 물론 하리는 실제 사람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녀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켈빈이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적 이미지가 그 모든 모순 속에서 물질화된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문제는 하리가 자신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않기 때문에 영원히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고,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실제의 위치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극장판 <트윈픽스>(Fire Walk with Me)에서 나타나는 불처럼, 그녀는 영원히 ?주인공과 함께 걷고?, 그에게 들러붙어,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 가녀린 유령이며, 순전히 외관에 불과한 그녀는 결코 지워질 수 없다. 그녀는 두개의 죽음 사이에서 영원히 되돌아오며, 죽었지만 죽지 않은(undead)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여성은 남성의 증상이며, 남성의 죄책감이 물질화된 것이며, 죄로 타락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남성은 오직 여성의 자살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바이닝거식의 반(反)페미니즘적 개념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솔라리스>는 여성이란 남성 판타지의 물질화에 불과하다는 개념을 그저 물질적인 사실로 제시하기 위해, 리얼리티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SF 규칙에 기대어 선다. 하리가 점하는 비극적인 위치는 오직 자신은 타자의 꿈으로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에 어떠한 본질적 정체성도 없으며, 자신 스스로가 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윤리적 행위는 자살이 되는 것이다. 하리는 자신이 영속적으로 현존하기 때문에 켈빈이 받을 고통을 알고서, 결국 자신의 재생을 불가능하게 할 화학약품을 삼켜 스스로를 파괴한다(이 영화에서 가장 두려운 장면은 유령과 같은 하리가 최초의 자살 시도에서 실패하고 다시 깨어나는 장면이다. 액체 산소를 들이마시고서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 바닥에 눕지만, 에로틱한 아름다움과 비천한 공포가 섞인 가운데 그녀의 육체가 경련하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영화에 계속 나타나는 외설적인 물질덩어리로 환원되고 말 때, 자기소멸의 시도마저도 실패하는 것보다 더욱 비극적인 순간이 있겠는가?). 소설의 끝부분에서 켈빈은 솔라리스 대양의 신비로운 표면을 응시하며 홀로 우주선에 남는다.

부정태의 전략- 여자는 남자의 징후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그 둘 사이에 감추어진 계약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한다. 즉 ‘노예에 대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구성된다. 너는 나의 육체이나, 너의 것인 그 육체가 나의 육체라는 것은 내게 알려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인의 측면에서 일어나는 부인은 이중적이다. 우선 주인은 자신의 육체를 부정하며, 탈육화된 욕망으로 남고자 하며, 노예가 자신의 육체로 행하기를 강요한다. 둘째, 노예는 마치 주인을 위해서 행하는 자신의 육체적 노동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활동이라는 듯 주인의 육체로 행동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자율적인 행위자로서 행동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중적(이며 자신을 지워내는) 부정의 구조는 남성과 여성관계의 부권적인 기반을 그려내기도 한다. 첫째, 여성은 단지 남성의 비본질적인 그림자이며 투사/반영으로 위치할 뿐이다. 그래서 신경증적으로 남성을 모방하려 하지만 결코 완전히 구성된 자기동일적인 주체성이라는 도덕적 고매함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반영일 뿐인 이 상태는 부정해야만 하는 것이고, 여성은 마치 여성이 (여성은 태생적으로 복종적이며, 동종적이며, 자기희생적이라는) 자신 스스로의 자율적인 논리에 따라 가부장제의 논리 내에서 행동한다는 식의 거짓된 자율성을 부여받을 뿐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역설은 노예가 더욱 노예가 될수록 자신의 위치를 더욱 자율적인 작인으로 (잘못)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가 여성에게도 적용된다. 여성의 궁극적인 노예상태는 그녀가 ‘여성적’인, 즉 순종적이며 동정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때, 스스로 자율적인 행위자가 된다고 (잘못) 인식할 때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을 단지 남성의 징후일 뿐이고, 남성 판타지의 체현이며, 진정한 남성 주체성에 대한 신경증적 모방으로 보았던 바이닝거의 존재론적 명예훼손은 그 자체를 넓게 수용하고, 충분히 전유하자면 훨씬 전복적인 측면이 나타날 수도 있다. 즉, 여성적 자율성에 대한 거짓된 주장, 아마도 최종적인 페미니즘 진술이란 ‘나는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타자의 환상이 체화된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솔라리스>에서 취한 것은 하리의 ‘두 가지’ 자살이다. 첫째, 실제로 켈빈의 아내로 살았던 시절의 자살과 둘째, 죽었으나 죽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소거하려 한 영웅적 행위이다. 첫 번째 자살 행위가 삶의 짐을 벗어내기 위한 도피에 불과한 반면, 두 번째 자살 행위는 윤리적 행위이다.

다시 말해, (지구에서 자살하기 이전의) 하리가 ?보통 인간 존재?였다면, 두 번째 하리는 그녀가 본질적 정체성의 흔적을 박탈당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급진적인 의미에서의 주체가 된다(영화에서 하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냐.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나는 하리가 아니야/…/말해봐요… 말해봐요… 지금 나라는 존재가 역겹나요?’). 켈빈에게 나타난 하리와 우주선의 동료인 기바리안에게 나타난 괴물 같은 아프로디테의 차이는 기바리안의 유령이 실제 기억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순수한 판타지로부터 왔다는 것이다(영화가 아니라 소설의 경우이다. 타르코프스키는 괴물 같은 아프로디테를 작고 순결한 금발 소녀로 바꿔넣었다). ‘거대한 흑인 여인이 경쾌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게 조용히 다가왔다. 난 그녀 눈의 흰자위에서 미광을 보았고, 그녀의 벗은 발이 내는 부드러운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풀로 엮은 노란 스커트만 입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은 자유롭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녀의 검은 팔은 종아리만큼이나 두꺼웠다.’ 기바리안은 원시적 모성 환상과의 대면을 견디지 못하고 수치심에 자살한다.

이 행성은 사유하는 듯이 보이는 신비로운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가? 라캉이 말하는 외설적 덩어리로서, 상징적 거리가 붕괴하며 언어, 기호가 아무런 소용없는 지점, 즉 외상적 실제인가? 이 거대한 두뇌, 타자는 일종의 심리적 단락(short circuit)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질문과 답변의, 요구와 만족의 변증법을 단락화하며 우리가 질문을 제기하기에 앞서 우리의 욕망을 지탱하는 가장 내밀한 판타지를 직접적으로 물질화하여 답변으로 내놓는다(오히려 부과한다, 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솔라리스는 비록 우리의 심리적 삶 전체가 그 판타지 주위를 맴돌기는 하지만, 결코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궁극의 환상적이며 대상적인 파트너를 생성하는 기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