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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동체 속 개인이라는 우주,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1994년

감독 질리언 암스트롱 출연 수잔 서랜든

EBS 2월28일(토) 밤 10시

‘남자가 무슨…’이라며 혀를 찰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원작 <작은 아씨들>을 좋아한다. 소설 속 어머니와 딸들은 참전 중인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굳건하게 의지해 살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여성들의 공동체에 관해 나름의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언니와 동생은 서로 평등하게 상대방을 대하고 친구처럼, 그리고 사이좋은 길동무처럼 여긴다. 남성들의 공동체가 일방적 질서와 복종을 강요하는 것과는 사뭇 풍경이 다른 것이다.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작은 아씨들>은 원작에 깃들어 있는 여성들의 심리묘사를 꽤 공들여 보존하고 있어 독특하다.

<작은 아씨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가에는 포용력 있는 맏딸 메그, 적극적 성격으로 작가를 꿈꾸는 조, 내성적인 베스, 깜찍하고 야무진 막내 에이미, 네 자매가 있다. 그들은 남북전쟁에 참전 중인 아버지의 안전을 기원하며 어머니와 함께 겨울생활을 꾸려나간다. 마치가의 이웃 로리는 물에 빠진 에이미를 구해주고 이 사건을 계기로 조는 마음의 문을 열고 동생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한편, 조와 우정을 유지하던 로리는 감춰두었던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하지만 조는 그가 좋은 친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거절한 뒤 뉴욕으로 떠난다. <작은 아씨들>은 원작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것으로 알려지며 여러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조지 쿠커, 마빈 르로이 감독 등이 영화화했던 것. 그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조지 쿠커 감독이 만든 1933년작이다. 겨울이라는 스산한 계절에 관한 묘사, 그리고 캐서린 헵번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은 특정 캐릭터에 집중하는 대신 각각의 인물에게 공평한 무게를 얹고 있다. 메그와 베스, 그리고 에이미 등이 겪는 일상의 단편은 개별 에피소드들에 녹아 있으며 또한 능력과 신체적 조건, 그리고 성격의 차이와 우열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라는 우주, 더불어 멀리서 바라본 개인들의 삶이 지니는 궁극적 공평함이라는 작품 주제는 잘 살아 있다.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은 호주 출신 여성감독이다. <나의 화려한 경력>(1979)으로 일찌감치 여성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것에 솜씨를 보인 암스트롱 감독은 <작은 아씨들> 이후에도 <오스카와 루신다>(1997), <샤롯 그레이>(2001) 등 주목할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오스카와 루신다>는 남성들 위주의 규범에 굴종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다른 어느 작품보다 성공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작은 아씨들>에선 수잔 서랜든 외에도 위노나 라이더, 클레어 데인즈 등이 출연하고 있으며 그녀들의 앳된 모습을 보는 것도 남다른 즐거움을 준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