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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정성일이 만난 <송환> 김동원 감독

독립영화 <송환>의 개봉(19일)은 독립영화인들뿐 아니라, 충무로 주류영화인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지난 8일 열린 특별 시사회장엔 이장호, 하명중을 비롯해 박찬욱, 김지운, 안성기, 유지태, 배두나 등의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했고, 이 영화에 필름프린트 5벌 뜨는 비용을 지원한 강제규 감독도 자리를 함께했다. “예전에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많이 부러웠는데 이젠 전혀 부럽지 않다.”(권해효) “처음부터 끝까지 울면서 본 영화는 처음이다. 보는 사람의 감정을 쥐었다 놨다 하면서 감정과 이성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영화였다.”(박찬욱)

<송환>은 화제가 될 이유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집단 푸른영상의 대표인 김동원 감독이 92년부터 12년 동안,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쫓아다니며 촬영한 그 분량이 800시간에 이른다. 또 다큐멘터리임에도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촬영 중간인 2000년 9월에 비전향 장기수의 북한 송환이 있었고, 영화의 등장인물 중엔 북으로 간 이도 있고, 남은 이도 있다. 영화는 주제의식을 앞세우지 않고 사람에 주목한다. 신문의 몇줄 기사로 읽어온 우리 시대의 거친 역사가 실제 사람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체온과 체취를 실어 전하는 <송환>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미국 독립영화제 ‘선댄스 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받기도 했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 앞서 인간의 삶을 좇은 12년이었지”

지난해 한국 영화 가운데서 <송환>을 최고의 영화로 꼽았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송환>의 김동원 감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나오는 조창손(73) 할아버지는 62년 연락선 부기관장으로 남파됐다가 체포돼 30년간 복역한 비전향 장기수이다. 낙천적이고 유머가 많은 그는 촬영 도중 김 감독과 제일 친해졌고, 2000년 북한으로 송환된 뒤 “김동원은 사실 내 아들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편집자

<송환>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 다큐멘터리 작업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끝낼 수 있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버티게 하는, 여기선 끝낼 수 없다는 그 힘이 느껴져서 2시간28분의 긴 상영시간 동안 긴장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게 김동원 선배에게는 매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남북관계가 수시로 변하고 자칫하면 이게 소재주의로 몰려서 작품 전체를 버려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걸 12년 동안 버틴 건 감독으로서 뭔가 대답을 기다린 것일 텐데 그 대답이 뭐였을까.

내가 기다렸다 조창손 선생님 얼굴 다시 보고, 조 선생님이 돌아가서 본 북한의 현실, 행복감의 정체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다고 할까.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건데. 달라진 북한의 모습에 대해 선생들이 머리 속에 상상하던 것과 직접 만나서 본 것과 차이를 어떻게 느끼고 계실지, 질문해도 대답을 잘 안 하시겠지만 미묘하게라도 표정 같은 걸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제는 남한에 계실 때와는 다른 관계로 만날 것 같은데 그럴 때 선생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그런 게 궁금해.

북으로 간 조 할아버지, 달라진 현실 행복한지 표정이라도 보았으면… 김 선배가 조창손 선생을 찍은 지 12년이 흘렀다. 12년은 긴 시간이고 조 선생은 이전에 고초를 겪으셨고 나이도 있으시다. 끔찍한 가설이지만 만약 조 선생께서 건강이 악화돼 중간에 운명을 달리했다면, 이 영화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때려치웠겠지. 조 선생 중심으로 찍고 있었을 때인데, 아마 작품을 포기했겠지.

그렇다면 이 영화는 테마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영화라고 받아들여도 되나. 비전향 장기수라는 건 개념이고 조창손 할아버지는 한 인간이지 않은가. 조 할아버지가 작품의 시간을 못 견뎠을 때 작품을 포기할 거라는 건, 인간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컸던 영화라는 말 아닌가.

아마추어리즘인지는 모르지만, 작품 하려고 만난 건 아니거든. 조 선생 때문에 관심이 촉발됐고,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조 선생을 찍은 건 아니거든. 작품을 하려다 보니 테마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꺼냈지만, 인간적인 관심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

<송환>은 찍는 것보다 편집이 지옥이었을 것 같다. 800시간 촬영분을 2시간반으로 줄이려면 편집에 원칙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테마를 뭘로 하느냐에 따라 수십편이 나올 수도 있었을 거다. 원칙이 있었다면 뭐였는지.

다큐멘터리에 선전 선동의 액티비즘이 빠지면 좀 싱겁지. 조 선생의 삶이겠지. 다 표현되진 않았지만 함께 남파돼서 몇 사람 죽고 몇사람 전향하고, 못 간 사람도 있고. 그게 이야기 축이었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시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를 배치하고. 그 다음에 옛날에 찍은 화면은 너무 듬성듬성해서 그걸 연결시키려고 내레이션을 넣고. 편집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어. 옛날 일기를 다시 끄집어내서 읽어보는 기분 있잖아. 저거 쓸 건가 말 건가보다 저 때 재밌었는데, 저런 일도 있었는데, 그런 생각으로 즐거웠다.

사실 이게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첫번째 본격 다큐멘터리 같다. 만약 이전에 이런 영화가 많았다면 <송환>은 한 사람 이야기만 다룰 수 있었겠지만 처음이어서인지 <송환>에는 계몽적인 부분도 있고, 설명적인 부분도 있다. 처음 하니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는 큰형 같은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닌가.

다큐멘터리를 모르고 찍었던 80년대, 막 설명하고 선전 선동하고, 뭔가 행동을 촉발하려고 하는 그게 다큐멘터리라고 알고, 왜 액티비즘이라고 말하는 것 있잖아. 나는 성격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시작했단 말이야. 그 뿌리를 지우기 힘든 것 같아. 아직도 액티비즘이 빠진 건 좀 싱겁게 느껴지고. 계몽적인 게, 선전이 나쁜 게 아니고 어떻게 계몽하고 선전하느냐가 우리의 관심사라고 생각하는데. <송환> 보고 나보고 짓궂다는 사람도 있고, 포스트모던의 경향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는 이도 있어. 나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 70년대 성향을 이어받았지만 자유주의적 기질이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액티비즘의 고집 같은 것도 남아있고. 다큐멘터리는 저널이고 아트이면서 액티비즘이라고 하는데, 셋이 잘 조화되는 걸 실험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

이 영화엔 장기수들의 지금 삶과 관계없는, 그들의 기억에 의존한 진술들은 다 뺐다. 어차피 기억이 역사인데 어떤 불안함이 있었던 건 아닌가.

그들의 기억에 의존하면 다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기억하는 현재에 관한 영화나 기억 자체에 관한 영화가 되든가. 그건 너무 포스트모던한 것 같지 않은가.

영화는 기억 이후만 찍는데, 거기에는 라이프만 믿을 만하지 메모리는 못 믿겠다는 원칙이 있던 것 아닌가.

민가협 같은 단체에서 선생들의 기록을 내놓고 있었고, 텔레비전 프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도 전향공작을 다뤘고. 그게 내 부담을 덜었던 것 같다. 또 지난해 개봉한 홍기선 감독의 극영화 <선택>의 영향도 커. 그 영화에 다 있으니까 굳이 내가 다 담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지. 기억에 의존한 진술, 학습으로 나온 대답, 내면과 상관없어 뺏다.

<송환>엔 의외로 한 사람과의 장시간 인터뷰가 없다. 어쩌면 장시간 인터뷰할 만큼 가깝지 않다는, 김 선배가 가까이 가긴 했지만 거리를 느낀다는 것을 읽게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의 북한관이나 수령론 같은 문제로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정면으로 선생들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거나 문제제기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러워졌던 게 사실이야. 너무 잔인한 질문이 될 것 같았고. 어쩌면 호기심일 수도 있잖아. 남한의 자유주의자가 퍼붓는 진지하지 않은 호기심 어린 질문일 수도 있잖아. 또 질문을 하게 되면 나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고. 그건 우리가 익히 아는 북한 선전물의 대답이야. 내겐 재미가 없었어. 넣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 나는 그게 선생들의 진정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학습받은, 내면과는 상관이 없는.

조창손 할아버지에게 이 지면을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강하시라는 말을 하고 싶지. 건강하면 언젠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1년 안에 꼭 찾아가겠다고 두번이나 큰 소리를 쳤거든. 4년이 됐는데 아직 못 간다는 게, 부시를 원망해야 할지. 송환이 있었던 2000년의 분위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화딱지 나는 현실이지. 그렇지만 또 기다리다 보면 만날 거라고 믿지.

일개 영화평론가로서 노무현 대통령께 간절히 바라건대, 김동원 감독이 조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도록 해주시길 바라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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