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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이슈] 관객은 독립영화의 미래다
2004-03-16

지난 3월6일부터 1주일간 일본 도쿄 시부야의 이미지 포럼에선 기획전 ‘한국독립영화 2004’가 열렸다. 일본의 각종 잡지나 방송의 한국영화 특집이야 심심치 않지만, 이번 기획이 눈길을 끈 건 일본 정부 주최로 한국의 ‘독립영화’들이 대거 초청되었다는 점. 부제도 심상치 않다. ‘영화의 새롭고 예리한 목소리.’ 토니 레인즈가 프로그램을 맡은 이번 기획전엔 <로드무비>(사진)처럼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부터 <여섯개의 시선> <나의 한국영화>를 비롯해 <슈가힐> <평범하기> <반변증법> <시간곡선> 등 중·단편, <오늘이> 등 애니메이션, 실험영화까지 포함돼 한국 독립영화의 장르와 내용의 스펙트럼을 한꺼번에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넘쳐흘렀다. 김홍준, 김인식, 임순례, 이성강, 김곡·김선 감독 등이 게스트로 초청됐다.

이번 기획전은 지난해 12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방일했을 때 내부적으로 결정된 것. 일본 대중문화 4차개방에 대한 일종의 ‘답례’다. 그렇더라도 일본인의 관심은 한국영화의 활력 자체다. 5일 밤 열린 개막파티에서 가와이 하야오 문화청 장관 역시 “한국영화 성공의 비밀을 알기 위해” 초청했다고 말했다. 관객의 반응도 5회 이상 표가 매진되는 등 뜨거운 편. 이미지 포럼의 프로그램 디렉터 이케다 히로유키는 “관객이 일본영화에 결여돼 있는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며 특히 “사회와 소통하며 개인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눈으로 본다면, 일본과 한국의 독립영화는 ‘기초체력’이 다르다. 영진위의 제작지원이나 독립영화인들의 활동은 한국이 에너지가 넘치지만, 관객층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번 행사를 연 이미지 포럼의 경우 77년 설립된 이래 20년 넘게 시부야에서 자리를 지킨 ‘자주영화’(독립영화)와 실험영화 상영의 진지다. 두개의 스크린과 비디오룸을 갖춘 극장은 6개월 정도의 프로그램을 미리 짜둔다. 올해 92살이 된 신도 가네토 감독의 신작 <부엉이>에서부터 젊은 감독들의 아방가르드적인 영화들까지, 최소 2주 이상 ‘신작 로드쇼’, ‘모닝 로드쇼’, ‘레이트 로드쇼’ 등 다양한 형태로 소화한다. 정부의 영화지원책이 별로 없는 일본에서, 이미지 포럼은 영화학교의 역할도 하고 있다.

7일 열린 패널 디스커션에도 “한국의 독립영화 관객층은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이 나왔지만, 사실 대답이 궁한 게 우리 형편이다. <송환>이 전국 개봉을 앞두곤 있지만, <낮은 목소리> 연작 이후 첫 개봉한 독립영화가 지난해 <영매>였을 정도니, 영화제 단골관객을 제외하곤 그야말로 ‘독립영화 관객층’이란 사람들의 특징을 말한다는 게 무리다. 일본도 주요 독립영화 관객층은 젊은 사람이지만, 이번 관객에서 보듯이 중년층부터 머리 희끗한 노인들도 적잖다. 독립영화 제작은 일본 역시 어렵지만,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됐던 <후나키를 기다리며>처럼 지자체가 자신의 고장에서 찍는 독립영화의 제작비를 대주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인기 드라마나 대작 유치에만 신경쓰는 한국의 지자체와 다른 지점. 메이지가쿠인대 사이토 아야코 교수는 “혁신적인 60년대의 운동 분위기, 그리고 1946∼47년부터 시작된 수십년의 자주영화 제작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한국의 독립영화 역시 80년대 사회변혁 분위기의 세례를 받고 태어났다. 영진위를 비롯한 지원도 활발한 편이다. 한국 독립영화의 오랜 고민을 상기시킨 기획전이었다. 결국 ‘다시 관객이 문제다’.

도쿄=한겨레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