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포커스
진실은 여전히 저 너머에 있다
김도훈 2004-03-30

스필버그의 SF 미니시리즈 <테이큰>, 외계인 음모이론 배경으로 한 어느 가족의 연대기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방문하고 있는가. 2002년 가을, SF전문 케이블 Sci-Fi 채널에서 2주 동안 방영되었던 10부작 미니시리즈가 채널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며 북미대륙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03년 1월에는 영국 에서 석달에 걸쳐 방영되며 대서양 너머까지 폭발적인 인기 바이러스를 전염시켰고 2003 에미상 최우수 미니시리즈 부문을 수상했다. 외계인에 의한 납치(Alien Abduction), UFO와의 조우, 로스웰에 관련된 음모이론 등 멀더와 스컬리적 요소를 모두 끌어모아 3집안의 4대에 걸친 역사 속에 풀어넣은 SF 미니시리즈 <테이큰>의 신드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47년의 로스웰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테이큰>은 3가족의 역사를 따라 현재의 시간까지 천천히 흘러간다. 2차대전 중 외계인에게 납치된 경험이 있는 전투기 조종사 러셀, 로스웰 사건의 진실을 자신의 야심에 이용하려는 야망에 찬 장교 오웬, 우연히 자신의 집에 머물게 된 남자로부터 아들 제이콥을 가지게 된 뒤 믿을 수 없는 사건들에 휘말히게 되는 가정주부 샐리. 이 세명의 인물과 그들을 포함한 3가족의 역사는 반세기가 지난 뒤 네 번째 세대인 소녀 앨리에 도달하기까지 <테이큰> 속에 운명적으로 얽혀간다.

컬트적인 신드롬을 이끌어낸 <테이큰>이 방영된 뒤 미국과 영국의 언론이 지적했듯이 <테이큰>은 사실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끊임없이 재생산됐던 UFO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서도 관습적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수백만명의 미국과 영국의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인 <테이큰>의 힘을 찾을 수 있다. 10부작을 이어가면서 시청자들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커다랗고 새카만 눈을 가진 조그마한 회색 종자들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재미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반세기의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3가족의 운명이 그 비현실적인 무대와 사건 속에서 운명적으로 얽혀 애증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숨죽이며 지켜보게 된다. SF 장르의 무대 속에 떨어진 가족이라는 존재의 딜레마. 바로 이 지점이 시리즈의 제목 위에 올라와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을 수긍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외에도 그의 영향력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4천만달러라는 TV시리즈 초유의 제작비를 들인 특수효과들은 TV영화의 퀄리티를 훌쩍 뛰어넘는 볼거리를 선사해주고, <미지와의 조우>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직접적인 자기 오마주도 등장한다. <테이큰>은 스필버그가 관여한 또 다른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는 다르다. 좀더 개인적이고 좀더 낮은 목소리로 진행되는 이 SF서사극은 과 <미지와의 조우>의 배경에서 펼쳐지는 소프 오페라와도 같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SF 장르의 마니아들을 실망시킬지라도 장르와 배경지식에 낯선 시청자들까지도 만족시키는 미덕을 가졌다.

가족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앨리 역의 다코타 패닝(<아이앰 샘>)의 또렷하고 섬뜩한 내레이션으로 막을 올릴 <테이큰>은 3월20일(토)부터 매주 토·일 밤 10시에 홈CGV에서 방영된다. 이야기 전개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Sci-Fi 채널처럼 2주 안에 연속적으로 방영하지 않는 것이 흠이다. 석달 동안 주말에 천천히 방영했던 방식은 많은 영국 시청자들의 불만을 산 적이 있다. 그 점에서 매주 금·토 저녁 8시에 재방을 배치한 홈CGV쪽의 편성은 시청자들의 연속적인 감상을 조금은 도와줄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다. 김도훈 closer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