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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혹스식 카사블랑카, <소유와 무소유>

To Have And Have not 1944년

감독 하워드 혹스 출연 험프리 보가트

EBS 4월11일(일) 오후 2시

하워드 혹스 감독이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대가임은 잘 알려진 사실. <빅슬립>에서 <스카페이스> <붉은 강>과 <리오브라보> 등 혹스 감독은 여러 장르의 영화를 두루 만들었다. 장르 역시 필름누아르에서 갱스터, 서부극과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꽤 넓다. 그런데 후대 비평가들은 혹스 영화에 숨겨진 몇 가지 의미심장한 장치들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가 시각적 상징이다. 제럴드 메스트 같은 비평가는 혹스 영화에서 특정한 사물이 인물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전달함을 논한 적 있다. 특히 담배 연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혹스 영화에서 담배는 성적 압박감을 대신하는 영화적인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 <소유와 무소유>를 보면 그런 주장이 타당함을 지닌다는 것에 공감할 만하다.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지만 무미건조한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대신, 연신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평이한 장르영화에 감독의 스타일이 스며들어 있는 좋은 예가 되겠다.

세계대전 중인 1940년. 카리브해 작은 섬 마르티니크는 나치에 동조하는 정부와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러나 미국인 해리 모건 선장은 오로지 사람들에게 배를 빌려주고 돈을 받는 일에만 관심있을 뿐 전쟁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킨다. 그러나 “성냥 있어요?”라는 말로 시작된 젊은 미국 여성 마리와의 인연으로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 모건이 그녀를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리더를 돕기로 한 것이다. <소유와 무소유>는 헤밍웨이 소설이 원작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내용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세계대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피아노를 치는 남자, 그리고 남녀의 사랑과 탈출에 이르기까지 <카사블랑카>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주연까지 험프리 보가트가 그대로 겹친다. 물질적 이익에 밝으며 대인관계에 있어 거의 결벽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카사블랑카>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여성 캐릭터는 많은 차이가 있다. 로렌 바콜이 연기하는 여성은 좀더 남성적이고 또한 자립성이 월등하다. 평소 남성들 세계와 투철한 직업정신을 중시했던 하워드 혹스의 세계관이 어느 정도 캐릭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소유와 무소유>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하는 모건 선장은 정부의 감시자 명단에 올라간다. 그리고 이후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과감하게 길을 떠난다. 이렇듯 개인의 행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야기는 사실 혹스 감독의 영화로선 낯선 것이다. 1960년대 혹스의 영화는 이전까지 미국식 영웅주의를 강조했던 것에 비하면 좀더 개인의 행보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변화했다. <소유와 무소유>는 혹스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당시 대중영화의 본보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말끔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