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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청춘 스케치 [6] - 고딩 감독 이정진
이혜정 박혜명 2004-04-13

내가 꾼 첫 번째 꿈, 고딩 감독 이정진

이정진(18 · 닉네임 피사))양은 하자센터에서 영상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는 중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보고 영화에의 꿈을 품게 됐다. 자신이 이 다음에 커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가 너무나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면서, 피사는 이전까지 관심 밖에 두었던 영화를 자기 삶 안으로 끌어들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선생들은 꼰대”라고 여기고 “더이상 한국에서는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도피하다시피 유학을 떠났던 피사. 그는 “당신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믿음을 남에게 강요할 때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보여줄 의도로 지금 생애 첫 영화를 만들고 있다.

-01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원래는 막연하게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여기 학교 생활이 안 맞아서 중국에 가긴 했지만 사실은 중국어라도 잘 배워서 나중에 취직이나 잘하자, 그런 생각도 있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한 정도였는데 막상 중국에 돌아가서 고등학교 입학 수속을 밟으려니까 그게 어찌나 싫었던지 몸에 병이 나서 앓아누웠다. 다섯번이나 입학 수속을 연기했다. 몸은 나아졌지만 꾀병으로 버티면서 엄마를 설득해 결국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일반 학교를 다시 다니자니 그게 나랑 안 맞아서 유학을 갔던 거라 싫었다. 그 와중에 하자센터를 알게 돼서 지난해 4월에 입학했다. 영상 전공이니까 졸업 전엔 자기 작품을 꼭 찍어봐야 하는데 지금 만드는 영화는 지난해 가을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던 거다.

-02 일을 시작하고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 점은.

=내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영화를 통해 그저 현상을 보여줄 뿐인 것 같다. 내가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걸 나의 의도와 똑같이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강남에 산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 말을 ‘강남’이라는 단어에 들러붙어 있는 수많은 오해들과 함께 받아들인다.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하게 됐다.

-03 일하면서 욕먹었던 일이나 칭찬받았던 일은.

=영화의 캐릭터나 상황에 대한 설명들이 내 머릿속에만 있다는 걸 알았다. 나 혼자 나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데도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었던 거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나 판돌이(하자센터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가 그런 불만을 얘기하더라. 너 혼자만 다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도 잘 안 해준다고. 내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 칭찬은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웃음)

-04 친구들이 내가 하는 일을 부러워할 때.

=일반 고등학교 다니면서 수능 공부하는 중학교 친구들은 다들 자기 상태가 불안하니까 영화 찍는 것 자체를 부러워한다.

-05 친구들이나 가족이 쯔쯔 혀를 찰 때.

=내 작업에 대해서 구체적인 얘기는 잘 안 하는 편이다. 특히 힘든 얘기를 별로 안 하기 때문에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06 그때 엎어버리고 싶었다.

=바로 지난주에 그랬다. 제작비 지원 신청하려고 학교에 낸 시나리오랑 기획서가 부실하단 이유로 거절당하고, 스탭 해주기로 한 친구들은 확답 안 주고…. 한다고 했다가 못하겠다고 그랬다가, 두세번씩 대답을 번복하니까 나중엔 진이 빠졌다. 혼자만 있으면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나, 조용히 엎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지하철 안에서 앞사람 뒤통수만 보면 확 때리고 싶고 쥐어뜯고 싶을 정도였다.

-07 힘들 때 위로하는 방법은.

=스탭 회의하러 갈 때까지는 계속 불안하다가 막상 회의를 하면서는 마음이 안정된다. 혼자 있으면 이 우울증에서 도저히 못 빠져나오겠더라.

-08 혹시 벌써 직업병이.

=스탭 회의할 때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한다. 괜히 불안하니까 자꾸 챙기고 확인하는 거다. 회의 시작하면서 한번 말하고, 중간에 또 말하고, 마지막에 마무리한다고 또 얘기한다. 나는 티 안 낸다고 나름대로 다른 말에 묻어서 이야기하는데도 친구들은 다 눈치채고 ‘알아들었으니까 제발 그만 좀 얘기해라’ 그런다.

-09 로또에 당첨돼도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인가.

=영화감독은 내가 꾼 첫 번째 꿈이다. 예전엔 중국어나 배워서 취직 잘하고 돈이나 잘 벌자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원래부터 돈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 돈보다 중요한 걸 찾지 못했던 것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내 존재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거고, 로또에 당첨이 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계속 할 것 같다.

-10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이상은.

=내가 하는 영화로 사람들에게 큰 걸 줄 순 없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행복을 찾는 데 있어서 길을 가다 발견하게 되는 작은 돌멩이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