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화가 폴 세잔은 당대의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빛에 집착하고 있을 때 사물의 본질적인 형태에 대해서 연구했다. 세상의 모든 형상을 이루는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공간 공식을 성립한 업적으로 그는 오늘날까지도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깊은 통찰을 통해 ‘자연은 원구, 원뿔,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정의했다. 이것을 다시 풀이해보면 ‘자연의 모든 형상은 동그라미+동그라미, 세모+동그라미, 네모+동그라미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결국, 세상 만물은 동그라미의 변용이다. 과연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그렇게 생겼고, 그 운행이 그러하고, 씨뿌리고 태어나고 자라는 것들이 그러하고, 구르는 돌멩이가 그러하다. 그리고 알고보면 시간도 원구, 원뿔, 원기둥의 모양으로 흐르고 있을 것이다. 자연은 동그라미의 변용이다. 회전하고 포용하고 우회하고 엮이고 꼬인다.
자연은 아름답다. 둥근 것은 아름답고 곡선은 우아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곡선은 불편하고 비싸다. 곡면체의 건축물, 유선형의 자동차, 동그란 방이 있는 집에 동그란 가구는 만들기가 어렵고, 공정도 복잡하며, 재료도 많이 소모되며 고도의 솜씨를 요구한다. 반면에 직선은 쉽다. 각면체는 편리하다. 전진이거나 후진, 평행이거나 교차, 논리적이다. 가공, 절단, 조립, 운반, 배치하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사각형은 규격으로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그러나 네모의 합은 더 커진 네모일 뿐이다. 동그라미가 포함되지 않은 사각형, 삼각형의 세계에 변화는 없다. 예외도 없다. 그리고 배타적이다. 수직, 수평의 관계만이 존재하며 그러므로 사각형의 세계에서는 더 크게 많이 가져야만 우월함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물질만능주의와 패권주의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이차원의 세계에 갇힌 존재의 유일한 희망이다. 규격화된 희망은 욕망이다. 욕망은 천박하고 추하고 뻔하다.
우리의 삶은 조금은 더 우아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리 이 네모틀 공간과 삼각형의 계급 안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우아하게 살면 즐겁다. 이를테면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는 싸움이지만 우아하다. 그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벌처럼 쏘는 것’은 직선이고 규칙이다. ‘나비처럼 난다’는 것은 곡선이고 불규칙이다. 직선은 공격이지만 곡선은 공격인지 방어인지 알 수 없다. 불확정성의 곡선은 우아하다. 불규칙한 패턴은 아름답다. 알리처럼 우아한 권투는 예술이다. 예술은 승부를 초월한다. 승부를 초월한 인생이라니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나비처럼, 꽃처럼 우아하게 살자. 세모에, 네모에, 동그라미를 더하자. 즉, 자연으로 돌아가자.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