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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04 전주국제영화제 - [1] 강력추천 8편

실험은 계속된다영화 성찬1 - 거장들의 과감한 도전에서 젊은 감독들의 날카로운 시선까지, 강력추천 8편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감독 짐 자무시/ 미국/ 2003년

<블루 인 더 페이스>(1995)에 출연하여 애연가의 철학을 읊조리기도 했던 짐 자무시는 1986년과 1989년, 그리고 1993년 각각 10분 내외의 단편 연작 <커피와 담배> 시리즈(이중 1993년에 만든 3편은 그해 칸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를 만들었다. 총 11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번 상영작 <커피와 담배>는 그 단편작업의 확장이며, 또한 모음집이다. 로베르트 베니니와 스티븐 라이트가 우스꽝스런 만남을 갖고, 이기 팝과 톰 웨이츠가 심오하게 횡설수설하며, 케이트 블란쳇이 전혀 다른 성격의 1인2역을 하고, 록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의 멤버들이 일장설을 늘어놓고, 빌 머레이와 랩그룹 우탕클랜의 멤버들이 엇갈린 대화를 나눈다. 짐 자무시는 커피와 담배가 놓여 있는 그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대화들을 상상한다. 제한된 공간에 들어선 인물들은 낭만적인 단상에서 속보이는 처세술까지, 혹은 긴장에서 화합의 순간까지 인종과 환경과 직업 등을 차이로 다종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파워 게임> In the Company of Men

감독 아르노 데스플레생/ 프랑스/ 2003년/ 118분

에드워드 본드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아르노 데스플레생의 다섯 번째 영화 <파워 게임>은 전작 <파수병>(1992), <어떻게 내 성생활은 토론되어졌는가>(1996) 등에서 실험했던 질문을 여전히 이어 던지고 있다. 무기 판매상 쥬리에의 양아들 레오나르도는 아버지의 권력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장 자리에 오르고 싶어한다. 그를 둘러싼 주변의 인물들과 뒤섞이면서 레오나르도는 배신과 음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파워 게임>은 일목요연한 내러티브의 핍진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방사형의 형식에 치중한다. 주인공은 레오나르도이지만 때때로 주변 인물의 에피소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영화는 넓어진다. 아르노 데스플레생은 ‘피’로 점철된 현재의 시간에 셰익스피어 비극의 정서를 차용하고, 근본적인 부친살해의 욕망을 등장시켜 뒤섞인 시간의 상징적 인물형으로 레오나르도를 위치시킨다. 동시에 영화와 영화바깥의 과정까지도 뒤섞는다. 영화 속 컷과 리허설 컷이 숏/리버스 숏으로 이어지거나, 난데없이 연극장면이 끼어들면서 소격효과를 일으키는 것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 The Story of Marie and Julien

감독 자크 리베트/ 프랑스/ 2003년/ 150분

누벨바그 세대의 상징적 필력가이자 여전히 왕성한 현재의 영화작가로 존재하고 있는 자크 리베트의 13번째 영화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의 상영시간은 다소 긴 150분이다. 물리적 지속시간의 누적 위에서 예술의 연계와 사유의 연장을 말하는 자크 리베트의 영화답게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전진한다. 영화는 4개의 장으로 나뉜다. 시계 제조공 줄리앙은 우연히 골동품을 소유하게 된다. 자신을 마담X라고 소개한 여자는 그 물건을 되돌려받기를 요구하며 거래를 걸어온다. 그 즈음 줄리앙은 마리를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미스터리극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그 이유가 무엇에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도록 느리게 탐색하던 영화는 중반이 지나 ‘놀라운’ 전환을 맞는다. 그러나 갑작스런 요동은 없으며, 그 전환은 다시 천천히 다른 모색을 시작한다. 서로 다른 차원- 예를 들어 영화와 연극, 상상과 현실- 이 접면을 이루도록 완성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자크 리베트가 이번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동거하는 철학적 미스테리를 던진다. <솔라리스>와는 또 다른 통로로 연결되는 죽음과 삶의 공존 상태, 그것이 흥미롭다.

<파우스트> Faust Lekce Faust

감독 얀 슈반크마이에르/ 체코/ 1994/ 89분

<파우스트>는 체코 인형애니메이션의 장인인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두번째 장편이다. 괴테와 말로의 희곡 두 편, 19세기 독일 작가 그라베의 소설을 자유롭게 각색한 이 영화는 한 남자를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기괴한 미로 속에 빠뜨리고 있다. 평범한 중년 남자는 거리에서 X 마크가 있는 지도 한 장을 받는다. 지도를 따라가 도착한 장소는 버려진 분장실처럼 보이는 방이 있는 건물. 남자가 가발을 쓰고 무대의상을 입고 <파우스트>를 낭독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파우스트의 전설처럼 나무인형 천사와 악마가 등장한다. <파우스트>는 슈반크마이에르의 전작처럼 클레이와 인형애니메이션, 실사가 형식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뒤섞인다. 남자가 나무인형 머리를 뒤집어쓰면 인형극의 인형이 되고, 그와 똑같이 생긴 진흙덩어리 메피스토펠레스는 곧바로 실사로 이어지는 식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음성은 세가지 <파우스트>의 대사가 거의 전부. 서구의 가장 위대한 서사시를 원료로 끌어들인 이 야심만만한 영화는 감독의 단편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늘어진 인형의 다리만 비출 때도 이상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기운이 있다.

<도쿄 대부> Tokyo Godfathers

감독 곤 사토시/ 일본/ 2003년/ 91분

곤 사토시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하는 몇 안 되는 애니메이터다. 전작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와 달리 행복한 애니메이션이지만, 곤 사토시는 도쿄 뒷골목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고선 <도쿄 대부>를 떠올렸다고 한다. 도쿄의 노숙자 긴과 하나, 미유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다. 냉소적인 중년 남자 긴은 아기를 경찰서로 데려가자고 하지만, 세심한 드랙퀸 하나는 친부모를 찾아주고 싶어한다. 사진 한장에 의지한 겨울밤 오딧세이. 그 여정에서 세 노숙자는 거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을 떠올린다. 아사히 신문은 “<도쿄 대부>는 애니메이션 팬이 아닌 관객에게까지 파장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사실적인 스토리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처, 아기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치유는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와 비슷하기도 한 요소. 도쿄 뒷골목과 그 모퉁이 쓰레기 더미를 직접 찍어 작업한 <도쿄 대부>의 배경은 흰눈이 쌓여 포근한 가운데에서도 대도시의 비정함을 드러낸다.

Twentynine Palms

감독 브루노 뒤몽/ 프랑스/ 2003년/ 119분

1999년 <휴머니티>로 칸 영화제에 나타난 브루노 뒤몽은 심사위원대상과 남녀주연상을 받아들었지만, 격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시골 경찰의 남루한 일상을 집요한 롱테이크로 포착한 이 영화는 ’철학자’ 출신인 감독의 이력까지 알려지면서, "오만한 예술영화"라는 비난을 샀다. 차기작 에 이르러서는, 지지자를 더 잃었다. 그럴만한 것이, 이 작품은 대단히 불편하고 또 불쾌하다. 에로틱한 로드 무비인 듯했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난데없이 끔찍한 유혈극으로 돌변한다. 사진작가인 남자의 로케이션 길에 연인이 동행한다. 사소한 일로 다투고 토라지는 것만큼이나 자주 이들은 서로의 육체를 탐한다. 사막 탓일까. 아님 연신 삐걱대는 그들의 관계 탓일까. 사랑을 나눌 때조차 정체 모를 긴장과 불안을 풍기던 이들 커플에게 (그들 자신은 물론 관객도)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 현실이 엄습한다. 감독에게 "생경하고 공포스러웠다"던 캘리포니아 사막의 이미지는 영화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 야유를 보내든, 찬사를 바치든, 이제 선택의 문제만 남았다.

<비밀요원 철고양이의 모험> The Adventures of Iron Pussy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미셸 샤오와나사이/ 태국/ 2003년/ 90분

외딴 주점에 양아치들이 들이닥쳐, 여종업원을 희롱한다. 이때 ’변신소녀물’에서 튀어나온 듯한 여인이 혈혈단신 그들을 물리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풀숲에 들어간 여자는 훌훌 옷을 벗더니, 대머리 총각이 되어 나타난다. 그의 정체는 일급비밀요원 ’아이언 푸시’(철고양이). 임무 수행을 위해 거부의 저택에 하녀로 위장 잠입한 그는 그 집 아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비밀요원 철고양이의 모험>은 서부극의 셋팅에서 주인공을 등장시킨 뒤, 무성 영화로 과거사를 소개하고, 뮤지컬로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액션어드벤처와 신파 드라마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아주 이상한 영화다. <금연자>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차용한 시도부터, 요령부득의 캐릭터(주인공의 성정체성은 뒤로 갈수록 모호해진다)와 스토리까지, 황당할 만큼 뻔뻔스러운 이 영화는 그러나, 대단히 정력적이고 흥미진진하다. 도저한 롱테이크, 멈춰버린 풍경 속에 세 남녀의 이상한 관계를 담아낸 <친애하는 당신>으로 주목받은 ’작가주의’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이 엉뚱한 영화로 돌아왔다는 것이, 물론 가장 놀랍고도 유쾌한 ’서프라이즈’다.

<벨빌의 자매들> Belleville Rendez-vous

감독 실뱅 쇼메/ 프랑스 외/ 2002년/ 80분

지난 해 프랑스 영화에 편중된 라인업으로 빈축을 샀던 칸 영화제는 뜻밖에도 자국 애니메이션 <벨빌의 자매들>로 체면 유지를 했다. <벨빌의 자매들>은 생략과 과장이 심한, 코믹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그림체의 2D 무성 애니메이션.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외로운 소년은 커서 경륜선수가 되지만, 경기 도중 괴한에게 납치당해, 도박장에 팔려간다. 할머니와 애완견 브루노가 그를 찾아 나서고, 이 여정에 왕년의 보드빌 스타였던 ’할머니 삼총사’가 가세한다. 뮤지컬, 코미디, 액션, 드라마를 종횡무진 누비는 <벨빌의 자매들>은 스리슬쩍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꼬는 여유도 부린다. 소년을 납치한 것은 ’할리푸드’의 악당이고, 그가 쓴 모자는 둥글고 커다란 귀 모양(미키 마우스처럼)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출신 실벵 쇼메는 그의 첫 장편에서 ’애니메이션계의 장 피에르 쥬네’라 할만한 독특한 시각적 상상력을 선보였고, 칸 영화제에 이어, 올 오스카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