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이 작은 행성 지구는 일종의 유배지와도 같다. 반경 몇 십 광년인지 몇 백 광년인지 아무튼 근처에 서로 외로움을 달래줄 다른 지적 생명체 하나 찾을 수 없는 이 외로운 별은 인간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어쩐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광경이긴 해도 으슬한 고독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주아주 오래된 우주미아의 후손. 외로움은 태곳적부터 유전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공포에 가까운 외로움이 엄습하고, 여럿이 있으면 군중 속의 고독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독의 뿔을 세운다. 누군가는 털어도 털어도 날아드는 먼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열렬하던 꿈과 희망과 사랑과 욕망이 모두 다 무감해지는 나이가 되어도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 우주의 탄생이 빅뱅으로 시작되어 점차 식어가면서 별과 별들이 서로 멀어져가는 거대한 이별의 과정에 있듯이, 한 인간의 탄생도 뜨거운 결합에서 시작되어 점차 반복되는 결별들을 겪으며 점점 더 외로운 존재로 쪼글쪼글 타들어가는 과정에 던져진 것이 인생이다.
김수영 시인은,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거미>, 1954년작)라고 노래했다. ‘설움’은 외로움의 다른 표현일 터이다. 외로움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어 몸을 까맣게 태우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집요한 에너지는 다름 아닌 외로움이다. 희망과 욕망보다 더 강한 에너지가 외로움이다. 외로워서 언어를 만들었고, 외로워서 도시를 건설하고, 외로워서 사회를 이루고, 외로워서 도로와 뱃길과 우편과 전화와 인터넷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반을 수천장 모으는 것도, 다 외로워서 그런 것이다. 외로워서 동네방네 러브호텔을 짓고, 노래방을 만들고, 교회를 다니면서 한편으론 외계생명체를 찾겠다고 우주선을 쏘아올린다. 인간의 역사는 외로움의 에너지로 돌아가고 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재테크가 필요하다. 외로울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까맣게 타들어갈 때 나는 진정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외로움이란 ‘나 외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혼자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은 창조적이며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외로움의 에너지를 온갖 소모적 오락거리를 찾아서 형편없이 탕진해버리느라 바쁘다. 외로움을 기피하고 외면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꿈도 없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