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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의 반체제영화?! <뉴욕의 왕>

King In New York 1957년

감독 출연 찰리 채플린

EBS 5월2일(일) 오후 2시

1950년대는 채플린에게 영광과 몰락의 시기로 기록된다. 걸작 <라임라이트>(1952)를 만들어 영화적 업적을 남긴 것은 감독으로서 채플린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다. 그런데 개인사는 사정이 달랐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의 열풍은 이 희대의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에게 잔혹한 상처를 남겼다. FBI와 미국 정부로부터 미국에서의 생활을 더이상 보장받지 못하게 되자 채플린과 일가는 거처를 유럽으로 옮겼다. 거의 강제추방이나 마찬가지 대접을 받은 것이다. 이후 채플린은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며 그 덕에 미국에서는 만들 수 없는, 과격한 풍자와 정치의식을 지닌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뉴욕의 왕>은 채플린 자신이 “풍자영화이며 반체제영화”라고 잘라 말했을 정도로 어느 채플린 영화보다 정치 메시지가 과격하다. 같은 이유로 영화는 미국에서는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공개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뉴욕의 왕>은 샤도프라는 인물이 주인공. 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트로비아에서 민중 봉기로 퇴위당한 샤도프 왕은 왕실의 보물과 재산을 빼돌리고 뉴욕으로 도망쳐온다. 뉴욕으로 온 다음날 샤도프 왕은 에스트로비아 대사로부터 총리가 그의 모든 돈을 들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순간에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절망에 빠진 왕에게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앤 케이. 그녀는 샤도프 왕을 TV에 출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그녀의 매력에 빠진 왕은 앤과 함께 파티에 간다. 앤은 만찬장에 카메라를 감춰두고 왕의 모습을 촬영하여 방송에 내보낸다. 이후 샤도프 왕은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된다.

<뉴욕의 왕>은 미국 자본주의에 관한 신랄한 고발장이다. 여기서는 특히 매스미디어와 정치인들이 풍자 대상이 된다. TV는 계획적으로 스타를 만들고 또한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희롱한다. 매카시즘에 관한 비판은 매섭다. 영화에서 샤도프 왕은 루퍼트라는 소년을 만나는데 그의 부모는 정치적으로 의심스런 친구를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같은 죄목으로 샤도프 역시 위원회에 고발당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테지만 영화 속 샤도프란 인물은 채플린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라임라이트>에서 자신의 유년기 체험을 영화에 녹여냈다면 <뉴욕의 왕>은, 제작 당시 고단한 채플린의 삶을 요약하는 것이다.

“내 영화적 스승은 채플린이다.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희극인이다. 채플린의 모든 희극은 비극에 기반을 두고 있다. 채플린이 창조한 인물의 진정한 선조는 돈키호테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워드 혹스 감독은 언젠가 채플린에 관한 존경심을 이렇게 표현한 적 있다. 사실 좀더 요모조모 살핀다면 <뉴욕의 왕>은 전성기 채플린이 만들었던 코미디보다는 힘이 달리는 면도 없지 않다. 풍자와 조롱이 지나쳐 영화 흐름이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는 것. 그럼에도 연출과 연기 등을 혼자 떠맡으면서 영화적 통제력을 잃지 않은 이 코미디언은, 여전히 천연덕스런 솔직함으로 관객을 웃고 울게 만든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