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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미국사
2001-06-07

<`D-13`>에 가려진 당시 쿠바와 소련의 상황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존 F. 케네디(JFK)만큼 재임기간중에 미국사적으로 또는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 우선 천주교도로서는 처음으로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서, 그것도 역대 최연소(43살)로 당선된 것부터가 사건이었다. 당선 이후엔 사회주의화한 쿠바를 침공했다가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고, 이에 대항하는 소련과 쿠바에 의해 미사일 위기를 겪기까지 이른다. 다행히 피를 말리는 막후 협상 끝에 쿠바에 대한 불침략 공약을 내걸고 그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으나 이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 국내적으로는 최고조에 달하던 인종갈등문제 수습에 정신이 없었고, 멀리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은 JFK로 하여금 전쟁에 개입하는 결정을 하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는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미국의 봉사와 원조를 위해 평화봉사단을 창립한 것과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계기로 냉전시대의 종식을 위해 ‘평화를 위한 전략’을 주창해 그해 7월 미국, 영국, 소련간의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있었다. 중국과의 국교수립을 위한 접촉을 지속적으로 시도한 것도 JFK가 남긴 업적 중 하나. 그러나 이런 그의 ‘평화주의적인’ 성향은 당연히 미국을 움직이던(혹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군산(軍産)복합체에는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고, 이 때문에 정치적 갈등이 서서히 고조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서 그의 임기 혹은 생애에 최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저격사건을 끝으로 JFK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고, 지금까지도 그 암살의 배후에 대한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JFK의 암살 이후 베트남전이 격화되었고, 워터게이트사건이 일어났으며, 미국의 달러화는 폭락을 거듭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JFK의 부재로 인해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JFK가 행한 실정의 결과가 뒤늦게 나타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단정지을 수 없는 게 당연한 일.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JFK를 그리워하고 그의 죽음에 의혹을 던지는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세상이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JFK가 할리우드의 영화적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의 암살을 다룬 <`JFK`>는 물론이거니와 그에게 가려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닉슨을 그린 <닉슨>도 그 대표적인 경우. 핵전쟁의 가능성 때문에 미국(혹은 전세계)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D-13`>도 JFK에 대한 새로운 영화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영화적 해석이 사실(史實)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영화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당시의 백악관에 설치되었던 도청장치에 의해 녹음된 내용을 근거로 쓰여진 <케네디 테이프들-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의 백악관 내부>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너무도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허구가 끼어들 자리가 많지 않았음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영화 <`D-13`>은 철저히 미국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비록 제작자이기도 한 케빈 코스트너가 쿠바의 아바나까지 날아가 카스트로를 초대해 <`D-13`>의 시사회를 열었다지만, <`D-13`>에는 당시 쿠바와 소련이 왜 그런 ‘도발’(?)을 감행했는지, 당시 쿠바 국민들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것이다.

우선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 설치됨으로 해서 워싱턴DC를 포함한 미국 동남부지역이 5분 안에 괴멸될 수 있다는 위협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62년 당시 미국이 소련을 향해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었던 핵미사일의 수는 500기 이상이었고 소련은 10분의 1 수준인 약 50여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소련의 입장에서는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응방법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미사일 위기 이전에 이미 JFK 행정부가 먼저 쿠바를 침공한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나라의 집권자도 자신의 국가와 국민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처할 경우, 상대방 국가의 입장에서는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 따라서 역사적인 맥락이 거세되고 미국의 위협이 강조되게 마련인 할리우드영화에서는, 다른 모든 적대국가들은 비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 역시 잠재적인 핵전쟁의 발발 위험을 최대한 막아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 쿠바지역을 정찰하던 미국의 U-2정찰기에 대한 공격자제 명령을 내렸던 후르시초프는, 쿠바에 배치된 핵미사일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수 혹은 고의로 미국을 향해 발사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위기의 12일째였던 10월27일, 한 소련군 장교가 명령을 어기고 미국의 U-2정찰기를 대공포로 추락시킨 것을 보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음을 직시했고, 결국 미국과의 평화적인 문제해결에 더욱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밖에도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과정들을 거치며 쿠바 미사일 위기는 발생했고, 또 해결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D-13`>에서 그나마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자국 국민들 혹은 전 인류의 생사에 대한 현명한 결단을 내리는 미국의 대통령과 그의 보좌역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되기까지 드러난 당시 매파 정치인, 군인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냉전은 먼 옛날 이야기가 된 게 사실이지만 오히려 국지적인 분쟁상황에서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지금,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인 혹은 군인들이 언제든 핵전쟁을 발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 <`D-13`> 공식 홈페이지 http://www.thirteen-days.com/

▶ <`D-13`>과 역사 http://www.cubanmissilecrisis.org/

▶ <`D-13의 진실`> 홈페이지 http://www.gwu.edu/∼nsarchiv/nsa/cuba_mis_c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