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충무로 이슈] 완성보증보험, 밀어붙이기식 안 될 일
2004-05-04

지난해 말 청와대에서 있었던 전경련 보고에서 완성보증보험이 언급된 이래, 이 사업이 조만간 실행될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차세대의 유망산업이라는 문화산업에 대기업들이 투자하겠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 완성보증보험 제도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나쁜 일은 아니다. 적어도 영화산업만 놓고 보자면 투자조합의 설립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시스템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당장 내년 내지 내후년에 실시하겠다는 문화관광부의 입장은 선뜻 찬성하기 힘들다. 최소한의 준비와 토대도 없는 상황에서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시장에서의 수요는 어느 정도 있는가? 요율은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보상의 기준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사고 발생의 사례유형과 빈도는 어느 정도 되는가? 산업현장의 제작관행, 유통관행과 거래방식은 얼마만큼 공개되어 있는가? 최소한의 매출 규모나 평균제작비 규모는 어떻게 되는가? 참여인력은 어떻게 구성되며, 산업분야별로 어느 정도의 인력이 활동하고 있는가? 현재로서는 이러한 핵심 질문들에 대한 거의 아무런 참고자료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문화관광부가 매년 <문화산업백서>라는 것을 출간하고 있지만, 정말 그것은 수박 겉핥기 수준에 불과하며 자료의 신빙성은 누구도 검증할 수 없다. 그나마 영화산업은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예컨대 음반산업의 경우 불투명한 제작구조와 연예기획사들과 방송사간의 커넥션, 복마전처럼 얽힌 유통구조에 대해 그 해결책은커녕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출판,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광고 등 여타의 문화산업 분야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보험사를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예산서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한숨이 나오는 것이, 문화관광부나 그 산하단체의 수천억원에 달하는 사업들 중 R&D에 해당되는 예산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말은 지식기반 산업이라지만 실제로는 기반이 되는 지식을 축적할 시간도 의지도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화관광부도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이제 문화산업통계를 체계화하겠다고 나선 모양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라는 표현이 그야말로 적확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단순히 보증보험 도입을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 내지 ‘면피’용으로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완성보증보험, 괜찮은 제도이다. 그리고 문화산업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중요한 안전판일 수 있다. 하지만 아주 급하지는 않다. 문화관광부가 현재 준비하는 통계와 정보수집 시스템을 3년간만 운영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사이에 금융과 문화산업의 속성을 두루 이해하는 전문인력도 부족하나마 키워놓기를 바란다. 그 다음에 보험회사 설립을 준비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수업료는 각오하고 있다’는 식으로 피해가지 말았으면 한다. 수업료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이나마 수학능력을 갖춘 사람의 수업료는 성장을 위한 알찬 토대가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없이 출발한 사람은 온몸이 부서져라 노력해도 몸만 상할 수 있다.

조준형/ 영상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