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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번역으로서의 현대 중국영화 읽기, <원시적 열정>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s)? 새로운 기술이 전통문화의 기호를 대체하는 때, 넓게 말하면 역사와 문화의 변혁기에 등장하는 것이 원시적 열정이다. 여기에서 ‘원시적’이라는 말은 어떤 권위를 가진 기원 혹은 낙후된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원시적 열정이란 잃어버린 순수한 기원 혹은 뒤처진 어떤 것으로서의 원시적인 것을 되찾으려는 열정이다. 서양의 시선은 타자 안에서 낙후성이나 기원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중국 혹은 동아시아에서는 그러한 서양의 원시적 열정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왔다.

레이 초우는 중국영화에서 원시적인 것이 머무르는 장소로 여성, 자연, 어린이에 주목한다. 그리고 1930년대 완령옥 주연의 무성영화에서부터 60년대 문화대혁명기 마오쩌둥과 홍위병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이미지를 거쳐, 80년대 첸카이거와 장이모 등의 영화를 공동체, 국가, 일, 학습, 사랑, 혁명, 젠더 등과 같은 범주가 뒤섞이는 교차점으로 읽어내려 한다.

초우가 책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문화번역이 아닐까 한다. 현대 중국영화는 탈식민 세계에서 문화번역, 즉 서로 다른 문화권끼리, 서로 다른 계급문화끼리, 서로 다른 미디어끼리의 교섭과 경합의 획기적인 예가 된다. 초우는 이러한 번역의 관점을 빼놓은 영화론과 문화론은 사회나 담론의 정치·경제적 역학을 분석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본다. 더구나 많은 영화비평이 현대 중국영화를 타자적이고 원시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의 많은 민족지들이 서양 이외의 문화를 타자화하는 태도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 현대 중국영화는 타자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의 이항대립을 허물어뜨리는 양 방향의 새로운 민족지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중국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제3세계 영화에서, 영상 이미지의 해석과 반(反)오리엔탈리즘 혹은 반제국주의 비평담론이 양 방향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예컨대 단순히 오리엔탈리즘 경향을 영화의 스토리나 주제에서 읽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스크린상의 이미지가 오리엔탈리즘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그것을 내부로부터 파괴시키는 전술이나 비판이 있다는 데 주목하는 것이다.

꽤 험난한 지적 유격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책이지만, ‘머리에 주먹질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카프카의 말이 있지 않은가. [레이 초우 지음 | 정재서 옮김 | 이산출판사 펴냄]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