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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적인 진군의 북소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O.S.T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순수하게 취향으로만 따져본다면, 약간은 가학/피학적인 데가 있다. 신자들은 그저 마음 평온한 상태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라고 기도하지만 이 영화는 그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를 가능한 한 잔혹하게 재현한다. 그래서 현실은 차라리 하이퍼 리얼이 된다. 일상의 작은 토막을 확대하여 기괴하게 보여줌으로써 일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하이퍼 리얼리즘이던가. 뭐 하러 이렇게 만들었을까. 9·11 이후의 미국인의 심리 속에 들어 있는 어떤 불안감의 발로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십자군 원정을 떠나야 하는 시기에 나온 일종의 징집나팔인가.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O.S.T를 여는 음악인 <올리브 동산>을 들어보면 뭔가 진군의 북소리 비슷한 것이 연상된다. 이 곡의 시작은 매우 음산하고 암울하다. 밑으로 흐르는 저음의 스트링 위로 약간은 신경증적인 이국적 관악기의 지속음이 올려진다. 예수의 고독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가 음악은 중반에 접어들며 점차 부르는 소리들처럼 느껴지는 코러스를 앞세우고 장중한 찬가의 느낌으로 바뀐다. 그 장중함은 후반부에 삽입되는 북소리의 힘을 받아 굳은 결심을 한 듯 장엄하게 전진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다음 트랙으로 넘어간다.

이와 같은 음악을 맡은 이는 존 데브니. 그는 1987년 첫 필름 스코어를 쓴 이래로 꾸준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영화음악가. TV, 극영화, 다큐멘터리 등 경계를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이번 영화음악 속에서 그가 살려내려 했던 분위기는 우선적으로는 ‘근동’이다. 각종 민속음악적 향기가 나는 악기들을 통해 예수가 살던 지역의 지방색을 살리고 있다. 그 느낌은 예상외로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성스러운 교회음악, 하면 연상되는 그레고리안 성가나 장엄미사곡 같은 느낌을 거의 전부 지우고 있다. 그것은 마치, 유럽 교회의 제도를 벗어나 초기 교회의 공동체적 특성 자체를 추구하려 했던 어떤 종파의 시도와 비슷해 보인다. 이 영화가 교회의 옷을 벗은 예수 그 자신을 그리려 했다는 것과 음악의 이러한 흐름은 맥이 통한다. 물론 정서를 유발해야 할 때에는 유럽적인 화성을 마다지 않는다. 한마디로 효과 중심이고, 영화의 흐름을 제대로 짚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존 데브니라는 음악가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O.S.T말고도 또 한장의 음반이 발매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들을 별도로 수록하고 있는데, 멜 깁슨 감독이 직접 선곡하고 앨범에 해설까지 붙였다. 가스펠에 앰비언트 노이즈를 엷게 바른 느낌이 드는 홀리 윌리엄스의 <어떻게 그를 부인할 수 있나>(How can you refuse him now)가 앨범을 열면 레온 러셀의 영감적인 곡 가 이어진다. 그처럼 성가와 속요가 함께 섞이며 어떤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랜베리스의 보컬리스트인 돌로레스 오라이어던이 부른 <아베 마리아>도 특이하다. 특유의 목넘김이 있는 창법으로 파이프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전적인 가스펠 곡 , 밥 딜런의 노래 등이 실려 있는데, 블라인드 보이즈의 블루스적인 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백인적인 느낌이다. 선입관을 배제하고 들으면 미국 음악의 큰 한줄기를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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