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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릴레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초현실주의자 루이 아라공은 그의 ‘미래의 시’에서 노래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홍상수의 다섯 번째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여기서 시작한다. 혹은 그의 영화 제목이 ‘남자는 여자의 과거다’가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 둘은 같은 말인데 하나는 유행가 가사처럼 들리고, 다른 하나는 선언문처럼 읽힌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 둘은 같은 말이다. 홍상수는 뻔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이야기라는 선험적 도식화를 이루는 서술을 못 견디게 괴로워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 자체를 (홍상수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찌그러뜨려서’ 괴물을 만든다. 이번에 그 괴물은 과거와 미래를 매듭지은 뫼비우스의 띠이다. 그런 다음 그는 진부함과 두려움 사이에서 시간 놀이를 벌인다. 그는 기억을 먼저 (플래시백으로) 진부하게 보여 준 다음 미래를 따라간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끝난 과거의 끝나지 않는 두려운 반복이다. 미래는 끝내 그 말처럼 미래로 남는다. 그런데 미래는 여자다.

난교에 대한 환상‥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어느 겨울날, 그러니까 첫 눈이 내린 다음 날, 칠 년만에 영화를 공부하러 유학 갔다 온 선배 헌준(김태우)이 ‘우리 나라에서 제일 위대한 미술대학’ 강사인 문호(유지태)를 찾아온다. 그 둘은 동네 중국집에서 낮술을 마시다가 (서로 다른 기억 속의) 선화(성현아)가 부천에서 술집을 한다는 말을 듣고 칠 년만에 찾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홍상수의 말로는) “죽 가다가 한 남자가 이야기의 밖으로 제쳐지고, 남은 남자는 옆길로 빠져서 그리로 끝”난다.

그냥 한 마디로 말하면 이것은 난교 섹스에 대한 환상과 그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다. 헌준과 문호와 선화는 셋이서 (혹은 선화의 선배까지 포함해서 넷이서) 돌아가면서 한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선화는 문호를 밀쳐내면서 외친다. “남자들은 다 똑같애, 섹스만 하려고 그러구, 개새끼들이야, 당신도 그 사람도” 그리고 칠 년 후 헌준과 문호가 부천에 사는 선화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들을 맞이하는 건 커다란 검은 개 ‘메리’다. 그 개를 끌어안으면서 선화는 말한다. “아이구, 내 새끼, 이뻐라” 개와 섹스를 했으니까 개를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간 그럴 지도 모른다.

밤새 선화가 헌준의 방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한 밤중에 문호를 ‘빨아줄’ 때 그 개는 어슬렁거리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그들은 동물처럼 섹스를 하지만 그 관계가 실패하는 것은 인간적인 질투와 사회적인 자리 때문이다. 그 둘 사이에서 우리를 역겹게 만드는 것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이다. 홍상수는 섹스를 방해하는 서로 간의 개인적인 전략과 사회적인 제도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인간이라는 매듭을 시간의 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인상적인 첫 장면. 문호는 헌준에게 선물이라면서 첫눈을 밟아보라고 말하고, 헌준은 그걸 밟다가 발자국을 따라 되돌아 걸어나온다. 잘못된 기억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부질없는 시도.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자꾸만 제 자리로 다시 되돌아오는 불안에 빠진다. 홍상수는 이 영화를 선형 구조가 아니라 가다 멈추고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의 회전문으로 안내한다. 중국 집에서의 이상한 좌우 팬은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고, 창문 바깥의 여자는 그들을 이끄는 사이렌과도 같은 운명의 예정조화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정말 부천에 간 것일까 플래시백 이후의 그 모든 것이 낮술의 취중 꿈이라면 어쩌겠는가. 문호는 등을 보이고 같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인부와 찹쌀떡 장사를 서로 다른 시간에 반복해서 보아야 하며, 문호와 헌준은 항상 등을 돌리고 걷는다. 선화의 집 신에서 쇼트는 모두 점프 컷으로 연결되어 감정의 흐름이 번번이 중단된다. 그리고 나면 다음날 문호는 그 둘을 잊어버린 듯 제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여관에서 여학생이 문호를 ‘빨아주다’가 남자 친구에게 ‘역시’ 들킨다. 이 모든 것이 기괴할 정도로 변주곡을 연주하듯 자꾸만 반복된다.

가장 끔찍한 것은 결국 문호가 귀가하지 못하고 부천의 밤거리에서 영화가 끝날 때이다. 그는 아직 택시를 타지 못했고 귀가에 실패했다. 낮술의 나쁜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그의 비루한 영혼은 유령처럼 밤거리를 떠돌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홍상수가 왜 문호를 집에 보내서 아내를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에 있다. 그에게 결혼은 점점 희미해지고, 집은 점점 멀어진다. 문호는 (혹은 홍상수는) 아내가 기다리는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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