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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2] - 대상 <이유정과 박해일> 작가 하수진
정진환 이영진 2004-05-11

코미디 액추얼리

대상 <이유정과 박해일> 작가 하수진

하수진(34)씨는 시나리오를 쓴 지 2년이 채 안 되는 초보작가다. 지금까지 습작한 시나리오도 서너편 뿐이다. 2002년 한겨례문화센터 시나리오 강좌에 등록한 것도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작업이 아니었다. 코흘리개 때부터 그의 꿈은 만화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꿈은 취미로 전락했고, 졸업한 뒤 “1년에 3번은 외국을 보내준다”는 말에 혹해 여행사에 입사했다. 지금은 12년 경력의 모 여행사 과장이다. 그런 그가 불쑥 시나리오를 배우겠다고 맘먹은 데는 회사 생활 10년 만에 묵혀놨던 만화가의 꿈이 슬슬 발동해서다. <몬스터>와 비슷한 소재가 떠올랐고, 이를 10권 정도의 만화로 그려내려면 먼저 캐릭터를 빚고 스토리를 굽는 연습이 필요했다고 판단했던 그는 적당한 강좌가 없는 탓에 영화 시나리오 강좌를 찾아 들었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부터 이상하게 풀렸다. 시나리오를 쓰면 쓸수록 재밌었고, 좀처럼 지겨움이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6개월 동안의 강좌가 끝난 다음에도 동기들과 같이 스터디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는 그는 뒤늦게 열심을 부린 끝에 판타지멜로 <이유정과 박해일>을 썼고, 처음으로 도전한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자 놀라는 극중 이유정처럼 그 또한 아직 당선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듯했다.

-이건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

=박해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같이 시나리오 공부하는 동생 이야기다. 그 친구 실제 이름이 이유정이다. 인터넷 한겨레에서 일하는 친구인데, 연극 팸플릿에 있는 박해일 사진을 오려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한동안 애인이라고 속이고 다녔다. 나이 든 분들이야 박해일을 모르니까 다들 믿었다던데, 그 이야길 듣고서 장난으로 ‘야, 너 그러다가 진짜 박해일이 나타나면 어떡하냐’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나중에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상황이 재밌겠다 싶더라. 인터넷 한겨레와 같은 층에 <씨네21>이 있으니까 박해일이 나타나는 게 불가능한 설정도 아니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이 자연스럽다.

=실제 생활에서 주고받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듣는 편이다. 재밌는 것은 몰래 메모지에 적어놓기도 하고. 커피 쏟고 나서 자판이 안 눌러지자 이유정이 ‘내 자판 언챙이네’ 하는 대사도 동료가 재밌게 말하기에 적어놨던 거다. 여행사 일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여행가이드 눈이 충혈됐는데 그걸 바라보고 있어서 심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보상해달라는 사람도 있다.

-코미디쪽에 강한 것 같다.

=무겁게 쓰려고 해도 코믹하게 흘러간다. 평소에도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문 열고 나가면 딴 나라면 어쩌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아 신용카드는 항상 들고 다녀야겠군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미친 애 취급받는다. (웃음)

-좀더 다듬고 싶은 부분이 있나.

=영화로 만든다면 후반부에 풀어놓은 환상과 현실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끝을 생각하고 썼으면 좋았을 텐데, 실제 이야기로부터 출발해서 상상을 부풀린 것이라 쉽지 않았다. 박해일이 현실의 애인으로 등장한 다음에 이유정과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스토커라는 설정으로 마무리를 해서 마감일에 겨우 냈는데 친구들이 보고서 뒷부분이 좀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이유정에 비해 박해일, 조우영 등 남자 캐릭터가 설정에 끌려다니는 다소 밋밋한 캐릭터라는 것도 약점이다.

-바쁘게 쓰느라 오타가 많은 건가.

=아니다. 맞춤법에 자신없다. 이번에는 못했는데 원래는 후배한테 오타 체크시키고 그런다. 전에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된 남자친구가 있는데 내가 쓴 글 보고서 회사에 놀러오기 전까지 여행사 과장이라는 걸 안 믿더라. (웃음)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나 <백 투 더 퓨처> 같은 판타지영화는 다 좋아한다. 법정코미디나 로맨틱코미디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끝이 해피엔딩이면 된다. 이정향 감독의 영화도 정말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쓸 수 있는 작가로 남고 싶다. 다들 감독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고. 시나리오 공부하는 스터디 이름이 아망인데. 그 친구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서로들 환갑 때까지 스터디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럼 우리 파지를 주어모아야 하나, 뭐 그랬는데 뽑혀서 다행이다.

<이유정과 박해일>

● 시놉시스

엉뚱한 상상을 즐기는 이유정은 광고 카피라이터가 꿈이지만 현재는 유기농 식품 판매 책자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조 대리를 맘에 두고 있지만, 그에겐 항상 애인이 있다. 회사 후배와 함께 연극을 보게 된 어느 날. 유정은 출연배우인 박해일에게 반하게 되고 장난 삼아 지갑에 팸플릿 사진을 오려넣고 다니며 회사 동료들에게 애인이라고 거짓말한다. 그러나 무명의 연극배우는 영화배우로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결국, 자신의 맘도 모른 채 깐족이는 조 대리에 의해 거짓말이 들통난다. 온갖 수모를 당한 유정과 고소하다는 듯 놀려대는 조 대리. 그러나 퇴근길 회사 앞에는 박해일이 와 있고, 상상 속 연인이었던 박해일은 오랫동안 사귄 사람처럼 유정에게 손을 내민다. 편한 후배로만 여겼던 유정에게 스타 애인이 생기자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조 대리. 반면, 유정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박해일과 데이트를 즐기며 꿈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 발췌

#6 회사(인터넷 한겨레 초록마을) 안분주히 출근하는 사무실 풍경. 일찍 출근한 유정은 지갑 속 박해일의 사진을 보고 있다.

수진: (갑자기 뒤에서) 어머! 그 팸플릿 사진 그렇게 넣으니까 증명사진 같다. 누가 보면 애인인 줄 알겠네. 언니두 참. 그런 스타일 좋아했어? 언니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조 대리: (큰소리로) 굿모닝!

…(중략)…

조 대리: (유정을 바라보며) 우리 유정씬 크리스마스에 뭐 했나? 솔로들은 이브부터 크리스마스까지 긴긴 시간을 뭐 하나 몰라.

유정: (인상을 구기며 무시한다)

수진: 유정 언니 애인 생긴 거 몰라요? 이브에 같이 연극 봤잖아요.

조 대리: 애인? 누가?

유정: (조 대리보다 더 놀란다)

수진: (유정의 지갑을 나꿔채서 조 대리에게 보여준다) 이사람, 멋지죠?

조 대리: (기가 약간 죽어) 뭐야. 사진도 넣고 다녀? 기생오라비같이 생겼구만. (유정을 한번 보고)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수진: 연하예요. 그러니까 유정 언니가 더 능력있는 거지. (유정에게 윙크한다)

조 대리는 삐죽삐죽 자리로 가서 앉는다.

유정: (지갑을 뺏으며) 야….

수진: 왜? (소곤거리며) 재수없잖아. 언니 혹시… 아직도 맘 있는 거 아니지?

유정: (버럭) 야!

출근한 직원들은 유정을 모두 쳐다본다. 민망한 유정.

#19 회사 건물 앞

울어서 퉁퉁 부은 눈. 고개 숙이고 현관을 나가는 유정. 유정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대는 직원들을 보고 이상하여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본다. 회사 50m 앞 차 옆에 서 있는 남자. 헉, 바로 박해일이다. 너무 놀라 뒷걸음치는 유정은 뒤의 누군가에 부딪친다. 뒤에서 유정의 어깨를 잡는 조 대리.

조 대리: 왜 이제 나와요? 애인이 회사 앞에 왔는데 어딜 가시나?

유정, 조 대리의 손을 뿌리치고 회사 건물 안으로 가려고 하나, 자꾸 장난을 치며 막는 조 대리.

조 대리: (유정의 얼굴을 보며) 뭐야 울었어…? (안절부절하며) 난 장난이었는데….

…(중략)…

여전히 현관 앞에서 승강이 벌이고 있는 유정과 조 대리. 차 앞에 서 있던 박해일 건물쪽으로 서서히 걸어온다. 다투는 유정과 조 대리 앞에 서는 박해일.

박해일: 이제 끝났어요? 유정씨.

유정과 조 대리 놀란 얼굴로 서로 바라본다. 유정은 진짜 자기에게 말을 하는지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의 퇴근하다 모여 있던 직원들도 놀라 수군거린다.

박해일: 유정씨 같이 일하는 직원인가 봐요? 안녕하세요? (악수를 청한다)

조 대리: (얼떨결에 악수를 한다) 아, 네….

박해일: 그럼 유정씨 가요.

유정: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