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패션 오브 러브스토리, <디자이닝 우먼>

Designing Women 1957년

감독 빈센트 미넬리 출연 그레고리 펙

EBS 5월16일(일) 낮 2시

영화 속 의상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최근 개봉했던 <다운 위드 러브>를 봐도 그렇다.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원색의 패션,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배우들 움직임이 흥겨웠다. 어느 바람둥이와 베스트셀러 작가의 연애담이지만 줄거리보다 시각적 즐거움이 더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다운 위드 러브> 같은 영화를 보며 만족했던 이라면 <디자이닝 우먼> 역시 비슷할 것이다. 로렌 바콜이 의상 디자이너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950년대 복고풍 의상이라고는 하지만 호화판 의상의 등장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압도할 지경이다. <파리의 아메리칸>(1952)의 빈센트 미넬리 감독작이며 그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디자이닝 우먼>은 한 남성과 여성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스포츠 기자 마이크는 취재차 방문한 휴양지에서 성공한 의상 디자이너 마릴라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린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해 충분히 파악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결혼까지 골인한다. 휴양지에게 꿈같은 신혼여행을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온 두 사람.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고 소박한 삶을 꿈꿨던 마이크, 화려한 생활에 익숙한 마릴라는 끊임없이 티격태격 다투게 된다. 마릴라는 마이크 친구들이라면 질색한다.

고전영화에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디자이닝 우먼>은 하나의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 스크루볼코미디라는 장르다. 하워드 혹스나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를 통해 1930년대 이후를 풍미한 이 장르는 1950년대에도 할리우드영화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디자이닝 우먼>은 철저하게 성대결의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남녀가 각기 속한 직업의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이크가 남성적인 스포츠 세계에 매료되어 있다면 여성인 마릴라는 의상 디자인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둘의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하고 때로 삐걱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일 지경이다. 영화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마릴라의 능력 또한 마이클의 신경을 자극하게 되며 이는 결국 이혼으로 향하는 함정으로 빠진다. 그럼에도 이 커플은 온갖 곤경을 함께 딛고 일어서면서 이혼 위기를 극복해낸다. 고리타분할 지경으로 장르의 관성에 익숙한 <디자이닝 우먼>은 같은 이유로 지루한 면도 없지 않지만 경쾌하고 빠른 영화 흐름이 이를 상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어느 비평가는 빈센트 미넬리의 영화에서 주연 캐릭터들이 처한 불안정하고 모순적 상황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영화의 시각적 구성에 영향을 끼치는 양상을 논한 적 있다. <디자이닝 우먼>에선 인물들이 결혼이라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또한 끊임없이 서로를 괴롭히는 과정, 그리고 화해에 이르는 상황이 될 것이다. <디자이닝 우먼>은 <파리의 아메리칸>이나 <지지>만큼 걸작의 반열에 오를 정도의 수작은 아니지만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훌륭한 장르영화를 만들었던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역량을 확인하기엔 족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