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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시가 말하는 영화론, <강령>
조성효 2004-05-28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에선 사람과 유령이 구별되지 않는다. <거대한 환영>이나 <밝은 미래>에선 유체이탈이 일어나고 <도플갱어>나 <강령>에선 또 다른 나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회로>에선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이 유령이 아닌가 하는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결론을 내리는 방식에서도 암울한 미래를 그리면서 일말의 희망은 남기며 <인간합격>처럼 꽤 살 만한 가족을 만들다가 결국엔 아무도 남겨놓지 않기도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오른쪽 눈으로 어두운 미래를 바라보는 동시에 왼쪽 눈으로 밝은 미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TV드라마로 제작된 <강령>에서 그는 왼쪽 눈을 천천히 감으며 한 부부를 응시한다. 마크 맥샤인의 원작소설은 이미 64년 브라이언 포브스에 의해 영화화됐지만 기요시는 소설이나 포브스의 영화를 리메이크 하기보다 자신의 스타일로 범죄를 재구성한다. 서로를 위하던 부부간의 대화는 점차 이기적인 것으로 변하고 하루만 꾸자던 꿈은 악몽으로 변한다. 2년 전의 한 인터뷰에서 유추해보자면 기요시에게 인간과 유령간의 차이는 ‘함께’하는지 혹은 ‘혼자’인지에 있다. 현실로 돌아오지 않고 이기적인 꿈에 홀로 매달리는 아내는 기요시에 의하면 더이상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일본에서 발매되어온 DVD의 퀄리티에서 기요시는 찬밥신세였다. 그나마 <회로>부터 아나모픽이 지원되는 정도다.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런 화질은 <강령> DVD의 어두운 점이다. 대신 회고전 때 내방한 감독의 강연을 20분간 담은 부록은 DVD의 밝은 점이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호러영화 제작의 애로사항과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일반론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