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향수병에 시달리셨다. 산좋고 물좋은 시골에서의 평범한 농군에서 하루아침에 팍팍하고 치열한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영 적응하지 못한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거기서 염소나 치고 고구마 밭이나 일구며 살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아버지의 주사를 피해 집을 나온 중학생이 바라본 깊은 밤하늘에는 별빛이 유난히 맑게 총총 빛나곤 했다. 멀리서 빛나는 별을 보면서 나도 울컥, 정체 모를 어떤 그리움에 빠져들곤 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400km 정도 떨어진 남쪽 땅이 그리워 신세한탄을 하는 동안, 지구에서 몇십, 몇백 광년 떨어진 별빛을 보며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영화 <스타트랙>(Star trek, 1979)에서는, 주변의 별들과 우주의 에너지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며 지구로 다가오는 ‘비져’라는 이름의 초거대 지적존재가 등장한다. 엄청난 세월 동안 우주를 떠돌며 우주의 어마어마한 정보와 물질들을 닥치는 대로 흡수하여 거대한 지적 존재가 된 기계생명체인 비져는, 해독할길 없는 전파 신호를 계속 보내오는데 그것은 알고보니 자신을 창조한 존재를 찾는 궁극의 질문이었다. ‘비져 V.Y.GER’는 다름 아닌, 아주 오랜 옛날 인간이 쏘아올린 탐사우주선 ‘보이저’(VOYAGER)호가 우주를 떠돌다가 어떤 우주의 에너지에 의해 기계생명체가 되어 지구로 다시 귀향하는 것이었다. 비져의 신호를 해독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인간들이 사용하지 않는 원시적인 전파신호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항공우주국이 1979년에 발사한 무인탐사우주선 ‘보이저2호’(VOYAGER II)에는 지구의 문명과 인간의 존재를 알리는 그림판과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메시지와 세계 각국의 인사말이 녹음된 디스크를 싣고 지구를 떠나서, 이미 1989년에 태양계를 벗어나 지금까지 끝없는 우주여행을 하고 있다. 거대한 문명을 이루고 살면서 창조와 존재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인간이 컴퓨터와 카메라와 무선 통신장치를 장착하고 인간의 모든 궁금증을 실어 띄워보낸 보이저2호는 이미 ‘비져’이다. 우리를 지구로 보낸 창조주를 찾아가는 귀소본능의 우주선. 그것은 가장 오래된 그리움의 발현이다.
북녘땅을 바라보는 통일전망대에서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플로리다의 케네디우주센터까지, 우리는 그리움을 쏘아올린다.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고, 사진첩을 꺼내보고 망원경을 들여다본다. 기억의 저편에는 정든 사람이 있고, 지평선 너머에는 고향땅이 있고, 별빛 저 너머에는 존재의 시원(始原)이 있다. 그리움은, 후천적으로 축적된 감정이 아니라 태곳적부터 유전자에 새겨져 전해 내려온 존재의 본성이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