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짧은 길이, 빛나는 상상력, 미쟝센단편영화제 6월23일 개막
오정연 2004-06-22

다양한 장르의 변주, 미쟝센단편영화제 6월23일 개막

국내 최초로 단편영화에 ‘장르’라는 기준을 도입하여 화제가 됐던 미쟝센단편영화제가 6월23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3회째를 맞으면서 비정성시(사회드라마),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 절대악몽(공포판타지), 희극지왕(코미디), 4만번의 구타(액션스릴러)라는 미쟝센영화제만의 장르 명칭도 익숙해졌고, 장르 안에서의 자유로움과 참신함이라는 예심의 기준을 강화한 결과 다른 영화제들과 겹치는 작품도 많이 줄어들었다. 제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은 올해부터 돈암동 영화의 거리에 위치한 아리랑 시네센터에서 열린다. 올해의 슬로건은 ‘단편영화, 즐거움을 만나다’. 피땀어린 창작물들이 좀더 많은 관객과 만나 다양한 즐거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축제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장르의 익숙함을 매개로 다수의 즐거움을, 낯설고도 참신한 장르의 변주를 통해 다양한 즐거움을 노린다는 미쟝센영화제 자체의 취지와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기존 장르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B급영화의 미덕을 중시했다는 것이 영화제쪽의 설명이다.

예년처럼 집행위원장과 부집행위원장을 맡은 이현승, 박찬욱 감독 등 충무로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감독들이 예심과 본심을 맡는다. 사회드라마는 이현승, 오승욱 감독이, 코미디는 봉준호, 이재용 감독, 멜로는 허진호, 장준환 감독, 공포판타지는 류승완, 박찬욱 감독이 심사하며, 김성수, 김지운 감독은 액션스릴러영화를 심사한다. 여기에 문소리, 봉태규, 윤진서, 이영애, 류승범 등 5명의 배우들이 명예심사위원으로 본선 심사에 합류한다.

앞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일본의 단편영화제인 도쿄쇼트쇼츠영화제(short shorts film festival)와의 교류를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는 13편의 공포판타지 작품들이 6월 말 도쿄에서 상영되며, 두 영화제는 이후 상호간 관련 작품 교류를 계속할 것이라고. 448편 중에서 본선에 진출한 57편의 작품 중 각 부문 최우수 작품에 500만원씩이 상금으로 수여되며, 이중에서 대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에는 500만원이 추가로 지급된다. 촬영감독에게 수여되는 미쟝센상(최고 촬영감독상)이 신설된 것은 올해부터 달라진 점(문의: 02-927-5696, http://www.mjsen.co.kr).

개막작·해외초청작

<악마들>

개막작으로 선보일 62명의 본선 진출 감독들의 동영상 자기소개서는 올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일종의 실험이다. 카메라 뒤에 있던 감독들이 카메라 앞에서 직접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 색다른 재미. 이와 함께 해외초청작 중 미스터리스릴러 작품들을 모아놓은 ‘히스테리 미스터리’부문의 세 작품도 개막작 대열에 합류한다. 10분을 넘지 않는 길이, 극도로 절제된 대사를 통해 미스터리 장르의 진수를 표현하는 데 성공한 수작들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는 구조 속에서 미묘하게 변주되던 상황이 충격적으로 끝을 맺는 <악마들>, 섬뜩한 주인공의 시선이 극대화된 공포를 제공하는 <누군가 보고 있다>, 익숙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영화화한 <퍼즐 맞추기>가 상영된다. 관객이 장르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키는 것은 간결한 단편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이외에도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 작품들을 모아놓은 ‘헬로! 멜로’ 부문도 해외초청작으로 선보인다.

비정성시 I 사회드라마

<언덕 밑 세상>

총 15편이 상영되며, 차분한 현실응시보다는 발랄한 형식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소통이 부재한 우리의 교육 현실을 인상적인 방법으로 비판한 <감상의 이해, 청산별곡>(이상근). 숨막히는 긴장을 유지하면서 오가는 기이한 대화를 앞뒤 설명없이 제시하다가, 모든 것을 한번에 설명해주는 반전으로 끝맺는 과감함이 돋보인다. <겨울철 독거노인>(이정현)도 만만찮은 반전을 자랑하는데, 별다른 대사없이 전개되던 흑백영화가 더없이 황폐한 결말로 끝맺으면서 아찔한 여운을 남긴다. <언덕 밑 세상>(서유민)은 한 꼬마의 지극한 아버지 사랑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같은 집요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돌파한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 한편 정리해고 노동자나 해직통고서를 받은 노동자를 다룬 <빗방울 전주곡>(최헌규), <빵과 우유>(원신연) 등 소외된 이들을 조용히 끌어안는 사회드라마들도 눈에 띈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I 멜로

<길 위의 연, 날다>

총 11편이 상영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밀하게 그려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상기된 표정(<폴라로이드 작동법>, 김종관),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은 여대생의 절박한 감정상태(<랑데부>, 박은영),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연인의 어긋남(<타임머신>, 이원식)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그 예. 단 한줄의 대사도 없이 보는 이의 가슴을 치는 <길 위의 연, 날다>(김영준)의 마지막 장면은 빈공간들을 비추면서 끝맺는 <비포 선라이즈>의 결말에 버금가는 놓칠 수 없는 명장면이다. 한 커플의 기이한 여행을 통해, 남자들의 이중적인 환상을 꼬집는 <히치 하이킹>(최진성)은 건조한 유머와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랑한다.

절대악몽 I 공포판타지

<비탈거미>

가장 많은 작품이 소개되는 비정성시 부문과 마찬가지로 15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공포보다는 판타지가 강세. <영의 지점> <편대단편>과 같은 SF물을 통해, 과거에는 엄두도 못 낼 만한 기법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름의 완성도를 통해 표현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현방법, 작품의 길이 등 여러모로 다른 색깔을 선보인 두 영화에, ‘사랑’이라는 궁극의 감정이 주요한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바다로 가고 싶은 도마 위 생선의 안쓰러운 환상을 보여준 애니메이션 <달콤한 우화>(방의석)의 독특한 방식, 시적인 영상과 앞뒤 설명이 필요없는 충격적인 결말이 대조되는 <비탈거미>(이서)의 수려한 촬영, 공포물의 모든 요소를 단편 속에 안정적으로 배치한 〈JILL>(이장훈)의 연출력, <네게 맞는 약은 살뚝한 가위뿐>(김유리) 등 다소 서툴지만 재기발랄한 B급영화의 감성처럼 공포판타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들을 접할 수 있다.

희극지왕 I 코미디

<올레그>

각양각색의 9편의 영화들이 선보인다. 다른 장르들에 비해 유독 하나의 코드나 색깔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이 부문의 특징.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우정이 가능함을 보여준 <올레그>(김민성)는 코믹장르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 세상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 욕망을 향한 경상도 사나이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신포도의 교훈으로 끝맺는 <남성의 증명>(윤종빈)은 상황의 유머를, 남자 화장실의 먹이사슬을 그린 〈W C Jungle>(정충환)은 촌철살인의 풍자를, 극단적인 아이러니를 그린 블랙코미디 <후유증>(공부성)은 비극을 제시하는 구성의 묘미를 살린 작품이다. 애완견의 슬픈 운명을 코믹한 그림체로 그린 <멍>(캐릭터디자인)과 같은 애니메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4만번의 구타 I 액션스릴러

<올드보이의 추억>

장르의 특징이 가장 강하면서도 단편으로 소화하기는 힘든 장르답게 비교적 적은 7편의 작품들이 상영된다. <거짓말 게임>의 김은진 감독은 이 부문 유일한 여성감독으로, 여고괴담의 소재가 될 만한 사건을 맥거핀으로 사용하면서 스릴러 장르를 통해 가장 여성적인 질문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인비져블1: 숨은소리 찾기>(유준석)는 관객에게 게임을 제안하는 기발한 방식으로 장르를 소화하는 작품. 순환식 구성(<올드보이의 추억>, 김민석), 소박하고 단순한 구성(<어느날>, 박준형) 등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칫 빈약해 보이기 쉬운 액션 장르의 내러티브를 극복한 영화들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인다. 특히 <어느날>은 박준형 감독이 제작, 각본, 촬영, 편집에서 출연까지 소화하는 1인체제 방식으로 성룡식 액션을 나름대로 선보이는데, 액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감독의 무한한 사랑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