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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안시페스티벌 아티스틱디렉터를 만나다
황혜림 2004-06-23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 도드라져

한국 애니메이션이 관심을 끌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응용과 실험은 올해 안시 출품작에도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는 경향. 혼자서 거의 모든 그림을 다 그렸다는 빌 플림턴의 셀애니메이션 <헤어 하이>를 비롯해 인형, 점토 등 장인의 손맛이 살아 있는 전통적인 기법도 여전히 유효하나,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인 흐름으로 떠오른 컴퓨터애니메이션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단편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로렌조>(Lorenzo)(사진),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라이언>(Ryan)도 그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작품들. 디즈니에서 제작한 <로렌조>는 전통적인 2D 드로잉과 3D 컴퓨터그래픽을 결합한 작품으로, 안락한 생활을 즐기던 집 고양이 로렌조가 꼬리없는 떠돌이 고양이의 꾐에 혹해 자신의 꼬리를 자르기 위한 혈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붉은 배경에 파란 로렌조와 독립된 개체처럼 반격을 펼치는 꼬리의 2인무는, 섬세한 붓터치가 돋보이는 이미지와 탱고 선율, 3D의 역동적인 앵글을 절묘한 호흡으로 아우르고 있다. <코디와 생쥐 구조대> <포카혼타스>를 공동 연출한 바 있는 마이크 가브리엘은 디즈니 특유의 안정된 애니메이팅을 견지하면서도 꼼꼼한 붓놀림의 손맛을 발휘해 기존 디즈니 장편들과 다른 질감을 보여줬다. <로렌조>의 수상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독립단편 작가들을 지지해온 안시에서 디즈니에 최고상을 줬다는 점에서 놀라움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라이언>은 단편 <빙고> 등 마야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3D애니메이션 실험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캐나다 감독 크리스 랜드리스의 신작. 한때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오스카상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부랑자가 되다시피 한 라이언 라킨과의 인터뷰를 실사로 찍어 컴퓨터그래픽으로 재구성한 이미지가 파격적이다. 신체 일부를 지우거나 앙상한 뼈대로 대체하는 등 초현실주의적으로 왜곡된 3D 이미지들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다 은둔을 택한 예술가의 꿈과 좌절을 섬뜩하게 담아내며, 관객의 예상을 넘어서는 테크놀로지와 상상력을 보여준다.

변함없는 것은 작가色에 대한 지지

그 밖의 주요 경쟁부문인 TV와 학생 및 졸업작품에서는 동물들의 심경을 코믹하게 드러내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클레이애니메이션 시리즈 <동물원 인터뷰> 중 <고양이냐 개냐?>(Cats or Dogs?), 그림 형제의 동화 <털북숭이>에서 영감을 얻어 인형과 픽실레이션, 오브제를 활용한 기괴한 이미지의 세계를 빚어낸 독일 작품 <알레라이라우>(Allerleirauh: 온갖 종류의 털이란 뜻)가 최고상을 수상했다. <라이언> <축 생일> 등에 대한 주목이 애니메이션의 표현 영역을 넓혀가는 3D애니메이션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안시의 관심을 반영한다면, <동물원 인터뷰> <알레라이라우> 등의 수상은 수공업적인 기법과 장인의 손맛에 드는 노고를 중시하는 안시의 오랜 전통을 확인케 하는 결과인 셈. <신밧드의 일곱 번째 항해> 등 1950∼60년대 할리우드 영화 속 괴물들의 창조주, 이들을 한 프레임씩 움직여 찍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및 컴퓨터 이전 시대 특수효과의 선구자 레이 해리하우젠이 올해 안시에서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는 최고의 게스트였음을 감안하면,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전통적인 기법의 소멸이란 섣부른 이야기가 아닐까.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은 첨단 컴퓨터 테크닉을 즐거이 포용하면서 작가 개개인의 독특한 손맛에 대한 지지를 잊지 않는 것, 아마도 변치 않을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매력이다.

안시페스티벌 아티스틱디렉터 세르주 브롱베르 인터뷰

"애니메이션은 수만 가지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

올해 안시페스티벌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면.

안시뿐 아니라 요즘 애니메이션계의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한다면, 프로젝트와 투자는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독립, 학생 작품 제작이나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는 관객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안시페스티벌도 지난해에 이어 다시 최다관객 동원 기록을 경신했는데, 관객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요 몇년 사이 또 다른 주요 경향은 역시 컴퓨터애니메이션과 3D의 강세다. 사실 이젠 컴퓨터애니메이션이란 용어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컴퓨터 2D 또는 3D가 보편화됐다. 간혹 전통적인 드로잉 방식의 2D가 사라져간다는 걱정도 들려오지만, TV가 보편화된 이후에도 책이 사라지지 않았듯 애니메이션의 각기 다른 테크닉들도 양립하며 발전해갈 것이다. 단, 컴퓨터라는 도구가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혁신적으로 쉽게 만들다보니, 올 신청작들만 해도 단시간에 별다른 숙고없이 값싸게 만들어 질이 떨어지는 작품들이 많아졌다는 건 좀 걱정스럽다.

<로렌조>의 그랑프리 수상에 대해 엇갈린 반응이 나왔는데, 안시의 입장은 어떤가.

심사위원이 아니니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선택이라고 본다. 애니메이션은 다이아몬드와 같다. 한쪽 면만 빛을 발한다고 해서 고품질의 다이이몬드가 아니듯, 안시가 독립영화, 특히 다양하고 질이 높은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지원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또한 애니메이션의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이젠 아무런 열등감 없이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올해 안시에서는 한국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 같다.

그렇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일하는 것도 매우 의미있었고, 특히 성장의 단계에 들어선 젊고 참신한 한국 애니메이션을 전세계인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아주 영광이었다.

인터뷰=신현미/ 웹애니메이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