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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럽고 혼란스러운 세상! <지난 여름 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 1959년

감독 조셉 L. 맨케비츠 출연 캐서린 헵번

EBS 6월27일(일) 낮 2시

스타의 몰락은 이따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지난 여름 갑자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젊은이의 양지>(1951)와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등에서 예리하고 핸섬하며 유약한 청춘의 모습을 유감없이 연기했다. 외모로 보나 연기로 보나 손색없는 배우였던 것이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그는 술과 약물에 깊이 중독되었고 외모 역시 달라졌다.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지난 여름 갑자기>는 비운의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 그리고 캐서린 헵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공연한 작품이다.

뉴올리언스 주립정신병원의 쿠크로비츠 박사는 병원의 어려운 재정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 시카고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 동네의 부유한 미망인 베너블 부인은 자기 조카 캐서린에게 뇌수술을 해주는 조건으로 병원을 위해 막대한 돈을 기부할 것임을 제안한다. 베너블 부인에게는 세바스찬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지난 여름 아들과 조카 캐서린이 여행을 떠난 뒤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캐서린은 사건 이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베너블 부인은 아들의 죽음이 캐서린과 관련있지 않나 의심한다.

<지난 여름 갑자기>의 내용이 낯설지 않다면, 연극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원작을 영화화했다. <유리동물원> 등을 쓴 테네시 윌리엄스는 195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심층적으로 인간의 심리적 공황상태, 그리고 미국사회의 가치관 혼란의 양상을 작품에 반영하였고 내용적으로 이전보다 과격한 글들을 발표했다. <지난 여름 갑자기> 역시 비슷한 궤도에 있다. 동성애와 광기, 약물 중독 등 당시로선 금기시되었던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처럼 당시 관객에겐 아마도 충격으로 들릴 법했을 대사들이 영화에서 우회적으로 표현되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는 다른 요소, 그러니까 촬영이나 사운드 등에 의지하지 않고 배우 연기와 대사에 무게를 싣고 있다. 쿠크로비츠 박사와 캐서린이 대화를 하면서 캐서린의 잠재의식으로 접근하는 과정은 영화의 모든 미스터리가 해결되는 과정이면서 비교적 완만하게 진행되던 드라마가 차츰 파국의 양상으로 치닫게 되는 길목이 된다.

<지난 여름 갑자기>를 만든 조셉 L. 맨케비츠는 각본가로서 더 실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이브의 모든 것>(1950)이 있다. 여성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대사들, 그리고 삶의 심오한 아이러니를 묘사하는 방식이 뛰어난 수작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 마니아들을 흥분시키는 작품이다. 이후 그는 서사 대작에도 눈을 돌려 <클레오파트라>(1963) 등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비평적으로나 흥행에서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리고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지난 여름 갑자기>를 찍고 몇년 뒤 세상을 떴다. 고독한 죽음이었다는 후문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