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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쩌란 말이냐, <오후> <비쥬> 휴간과 한국 만화의 현실
박초로미 2004-07-02

지난 6월14일 월요일. 그다지 소문이 빨리 퍼지지 않는 만화계를 온통 혼돈의 도가니에 빠뜨린 뉴스는 시공사발 ‘<오후>와 <비쥬> 휴간’ 소식이었다. 서울문화사, 대원CI, 학산과 함께 국내 4대 메이저 출판사로 불리던 시공사. 후발주자이지만 선두를 위협하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던 출판사. 특히, 2001년 새로운 국장의 영입으로 고급 양장본, 일러스트레이션 북 등을 기획하며 침체에 빠진 주류 만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었다. 특히 연이은 휴·폐간 사태로 자괴감에 빠져 있던 만화잡지의 대안적 모델로까지 불린 격월간 만화잡지 <오후>의 창간은 시공사 만화사업의 꽃이었다. <오후>는 정확한 타깃 분석과 작품 기획, 컨셉과 디자인의 차별화, 그리고 효율적인 홍보로 일약 2003년의 성공사례로 떠올랐다. 그런 잡지가 1년을 못 넘기고 휴간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고, <오후>를 사랑하는 팬들이 모이는 게시판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슬프고, 당황되지만 이게 바로 우리 현실이다. 80년대 후반 시작되어 90년대 꽃을 피워 만화의 주류 시장을 장악한 일본식 잡지 시스템의 왜곡된 시장구조가 맞이한 비극적인 종말인 것이다. 수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어온 소화불량에 걸린 물량 중심 출판은 대여점이라는 비극을 낳았고, 한국의 주류 잡지만화는 이 대여체계에 기생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한국의 많은 잡지는 찍어낼수록 적자만을 누적시키고 있으며, 메이저 잡지사들은 일본 만화의 판권 계약을 위해 잡지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손해를 보지 않는, 어쩌면 돈을 벌고 있을지도 모르는 잡지가 이 와중에 휴간의 철퇴를 맞았다. 오호 통재라. 잡지 <오후>와 <비쥬>를 아끼는 팬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냉정하게 오늘의 이 상황은 물량 중심 출판과 대여체계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이다. 하지만, 이 슬픔의 임계점은 결국 한국 만화에 새로운 희망을 낳게 할 것이다. 메이저 잡지는 망하지만 오늘 한국의 만화는 새로운 희망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경향신문의 만화지면 ‘펀’(Fun), 수많은 기획만화의 성공사례, 만화에 대한 많은 관심들. 준비된 희망의 노래에 동참할 새로운 자본이 늘어난다면, 한국 만화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프지만 기쁨을 보는 것. 그리고 그 기쁨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일, 이것이 바로 만화계가 할 일이다. 그리고 만화계는 진지하게 독자들에게 약속해야 한다. “독자 여러분, 이제 새로운 만화를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겠습니다. <오후>와 <비쥬>의 폐간은 가슴 아프지만 더 좋은 만화를 위해 만화에 많은 애정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