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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이슈] “새로운 관문을 창조해라”

온라인저작권 논란③ - 법조인으로서 저작권자들에게 고함

근대적인 인간에게 법이란 공동체 구성원간의 계약이다. 무엇을 법으로 정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이념은 ‘정의’겠지만 ‘상부구조’라는 은유가 말해주듯이 법은 공동체의 경제적, 기술적 토대를 결정적인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필요하고 정의로운 법도 그 토대가 바뀌면 수명이 다하거나 변화가 불가피하다.

저작권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형성된 근대적인 권리다. 저작권은 향유자의 이익을 제한하고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이 인류의 발전에 궁극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입법화되었다. 그 기본 발상은 수긍이 되며 오랫동안 인류공동체에서 통용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법은 ‘말이 된다’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디지털과 인터넷은 근대 저작권이 터잡고 있던 인쇄매체 중심의 기술적 토대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저작권 제도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작물이 유통되는 중요한 관문을 지켜 통행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전의 관문 외에 빛의 속도로 통과할 수 있는 새로운 관문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무수히 열렸고, 그곳에서 통행세를 제대로 받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때 저작권자들이 할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새로운 관문을 자신들이 통행세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폐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통행세를 내지 않고 순식간에 관문을 지나다니는 무수한 사람들을 모두 적발할 수 없으니 본보기로 몇 사람이라도 혼내자는 방식도 아니다(조준형씨는 이 점을 강조하였을 것이다). 그들로선 빛의 속도로 통행세도 내지 않고 지나다니는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고, 이것은 비난하기 어려운 인간의 본성일 터다.

이제 저작권자들이 할 일은 새로 열린 자연발생적 관문들보다 더 빠르고 더 넓고 더 편리하고 더 풍성하면서도 1인당 통행세는 저렴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통행세를 지불하고 통과할 의사가 있는 관문을 창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영화관에서 본 뒤, 영화관에서 놓쳤거나 오래되었거나 또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을 몇번의 클릭만으로 즉시 최고의 화질로 볼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누군가 내게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동전화요금의 몇배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 만일 그러한 관문의 창조가 불가능하다면 저작권자들은 몰락할 것이며, 그러한 관문이 창조된다면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고, 창조한 자들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그러니 저작권자들에게 말하건대, 낡은 관문에서는 철수할 준비를 하면서 한시적으로만 지키고, 새로운 관문의 창조에 몰두하라. 아무도 그것을 대신 창조해주지 않는다. 나는 당신들이 새로운 관문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는 것에 내기를 걸겠다. 당신들이 예전의 관문에서 투덜대며 허송세월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더 자세히 들으려면 내가 지키고 있는 관문에서 내게 통행세를 지불해야 한다).

조광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