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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는 정보통제부?
김도훈 2004-07-07

김선일 동영상 배포, 네티즌 윤리에 맡겨야

“나는 살고 싶습니다.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왜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습니까. 제발 노무현 대통령, 제발 부시. 제발 이라크에서 나가주세요. 나는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6월23일 이라크 무장단체에 살해당한 김선일씨는 오늘도 광케이블을 타고 전국의 수백만 컴퓨터 화면 위에서 절규하고 있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4분짜리 참수 동영상은 미국의 한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지금은 개인 컴퓨터를 서로 이어주는 P2P 프로그램들에 의해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중이다. 동영상은 마치 영화 <링>의 저주받은 비디오 테이프처럼 자가증식을 계속한다. 그러나 유포 이후로 이어진 논쟁들은 마치 시대를 거슬러올라간 듯, 21세기 첨단 미디어의 문제 속에서 정부의 전근대적 대응방식들이 함께 흙탕물 속에서 뒹구는 중이다. 흙탕물을 살짝 걷어내고 속을 한번 들여다보자. 동영상이 유포된 바로 다음날인 24일,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사이트들에 대한 접속차단을 지시했고, 포털 사이트들에도 역시 ‘참수 동영상, 김선일 동영상’등을 금칙어로 지정하라고 공문을 내렸다. 또한 동영상 유포자에 대해 강력한 형사처벌을 사법당국에 의뢰했다. 25일, 정통부는 60여명으로 구성된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했고, 행정자치부와의 협의 아래 올 하반기에 사이버테러대응단 발족을 밝혔다. 원래는 일개 과에 해당하는 부서였으나 경무관을 단장으로 하는 100명 규모의 대규모 조직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참수 동영상’ 확산, 전근대적인 봉쇄 정책

그런데 동영상 유포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긴 한 것일까. 9개의 조항으로 나누어져 있는 정보통신법 53조의 1항3호에 따르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 문언 음향 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이 처벌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스토킹처럼 반복적으로 특정인에게 보내지는 동영상에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53조2항에는 ‘위원회가 심사한 뒤 정통부 장관이 사업의 정지 혹은 제한을 명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지만. 이것은 개인이 아닌 정보통신사업자에만 해당하는 것으로써 포탈에 동영상 삭제요구를 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사실 정통법 53조는 원래부터 9개의 세부적인 조항으로 나누어져 있지는 않았다. 추상적인 조문으로만 되어 있었던 53조가 2002년 12월26일에야 지금처럼 개정된 것으로, 2002년 2월27일에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라는 위헌판결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조범석 변호사는 “9호로 나누어진 지금의 조항으로도 동영상 유포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형법의 경우는 국민의 공통된 정서가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행정제제정도만이 필요에 따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미 대법원 역시 “혐오동영상을 홈페이지에 개시한 것으로 개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조항은 법에 없다”고 밝힌 적이 있다. 또한, 조범석 변호사에 따르면 “정통법 65조에 사업자가 아닌 일반행위자를 대상으로 하는 징역 1년 이하 벌금 1천만원 이하의 벌칙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동영상 유포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다만 동영상을 영업 목적으로 배포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정부의 위법적 대응, 노총의 갈지자 행보

한편, 한국노총은 정통부의 조치가 파병반대 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정치적 의도이자 국민의 알 권리 침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잇단 비난으로 노총은 6월26일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동영상 유포를 동의하는 듯한 오해를 볼러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한다”라고 사과문을 발표해야만 했다. 흥분한 국민의 정서를 살짝 걷어내고 보자면, 정부는 김선일씨가 참수되기 직전에 남긴 유언부분만을 편집한 동영상마저도 차단 목록에 슬그머니 포함시켰다. 그러니 결국 “나는 살고 싶다”며 절규하는 김선일씨의 유언은 소리없이 그저 텍스트로만 남아 그 생생한 메시지의 날카로움을 마모시킨다. 인터넷은 광대하다. 그 속을 헤엄치는 수많은 정보들을 낚는 것은 개인의 몫이며, 그 정보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도 개인의 윤리에 달려 있다. 이미 인터넷 이용자들의 암묵적인 참수 동영상 유포 반대 자정행동들이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는 중이며, 이런 자발적인 행동들은 많은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법률마저 거스르며 긴급하게 진행되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대응은 의심스럽다. 국민의 ‘심증적인 동의’를 등에 업고서 법률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적절한 조치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마치 9·11 이후 ‘Patriotic Act’를 만들어 정보의 차단과 검열을 정당화했던 부시 행정부의 행보와도 비슷하다. 김선일씨 동영상의 무자비한 유포에 분노하고 반대한다면, 그 분노는 개인의 도덕률에 대한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옳다. 미디어를 대하는 개개인의 성숙한 가치관은 정부의 권위와 제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전근대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