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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스크린쿼터 논쟁 [4] - 영화인들이 참여정부에 보내는 엄중 경고

“스크린쿼터, 대안적 세계화의 액션플랜”

비열한 수사학적 테러

“그렇게 잘 나가는데 하루도 줄일 수 없냐”는 주장은, 유지나 교수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축소반대자들을 옹졸한 폐쇄주의자로 보이게 하려는 비열한 ‘수사학적 테러’에 다름 아니다. 이런 식의 테러가 “국익을 위해 양보하자며” 내놓은 국익의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BIT가 풀어줄 국제투기자본의 자유로운 활공은 누구의 국익에 기여하는가? 지난 5년간 80조원을 떼어간 것도 모자라서 아예 한국경제를 카지노판으로 만들자는 것인가? 그에 반해 우리 영화의 발전으로 우리가 얻고 있는 이익은 얼마나 실감나게 큰 것인가?(연간 1조2천억원의 직접매출과 5조5천억원의 부가가치 생산효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경제성장에 기여하며 국민적 자부심을 갖게 하는 유일한 효자가 바로 한국영화가 아닌가? 군사적 힘에는 밀리지만 문화경제적으로는 미국을 자국시장에서 능가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은 근대화 이래 우리가 처음으로 맛보는 쾌감이다. 이런 자부심의 “필요조건”인 스크린쿼터를 왜 줄여야 하는가? 비열한 수사학을 제거하고 나면 답은 간단하다. 미국의 압박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말을 치사하게 돌리지 말고 국민들에게 솔직히 사정해라. 큰형님이 “팔을 비트니까” 좀 봐달라고.

테러에 맞서기

하지만 “팔을 비튼다고” 팔이 부러지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국민적 분노와 국제윤리를 무시하고 “팔을 비튼다고”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는 자들이 뒤에서 챙기는 속셈은 개발이권과 군사동맹 강화다. 진정한 테러리스트인 이런 자들이 이제는 문화적 자부심과 신성장동력마저 내놓으라고 한다. 영화인들이 참여정부 “탄생”에 기여했다고 그 과오마저 봐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영화인들이 앞장서서 참여정부의 “몰락”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우리가 미국을 동맹국으로 인정해온 것은 호혜적인 한에서이지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주권을 박탈당하면서까지는 아닌 것이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영화인들이 대안없이 축소 반대만 주장하고 있는가? 거짓말 마라. 우리는 필요조건의 하나인 쿼터만이 아니라 다양한 충분조건이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배급과 상영, 제작 차원에서의 다양한 충분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영화는 콘텐츠의 시대인 21세기 경제의 엔진이므로 IT, BT산업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관료들은 아직도 20세기 하드웨어시대의 관습에 젖어 콘텐츠에 대한 투자 마인드를 결여하고 있고, 게다가 정부 투자의 선결 조건으로 쿼터 축소를 은밀히 요구하고 있다. 한심한 작태다. 2003년 12월 대통령 보고대회에서 밝혀졌듯이 영화산업/문화산업은 2010년대에는 GDP 10%대의 한국경제의 제1산업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런 산업에 적극 투자하지 않는 게 일국의 경제정책인가?

제도적 정비와 대안적 세계화의 길

1천만 시대를 연 2단계 도약 단계에서 한국영화는 더 폭넓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문화부와 영화인 모두가 영화 다양성 증진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것이다. 스크린쿼터는 본래 세계 영화시장에서 민족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이다. 지난 10년간 이 정책이 성공한 현 시점에서 한국영화 내부의 다양성 증진을 위한 보완책이 시급하다. 현행 최소의 무상영일수 106일 내부에서 14일의 “다양성 영화 쿼터”를 책정해보자. 지난해 영진위가 인정한 한국 “예술영화” 12편의 실제 평균 상영일수는 10일이었고, 0∼60일까지 상영된 일수 중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 것은 7일이었다. 14일의 마이너리티 쿼터는 이를 두배로 늘리자는 것이다. 다만 멀티플렉스의 경우는 스크린 하나로 몰아서 운영할 수 있게 해주면, 10개관을 가진 극장의 1개관은 140일의 마이너리티 상영관이 될 수 있고, 멀티플렉스마다 특성화된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이 관은 특성화를 위해 나머지 일수를 판권을 보유한 외국 예술영화를 재개봉하여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다양성 증진에 기여하게 된다). 또 배급의 효과를 위해 영진위가 다양성 영화 전문배급회사를 지원해주면 단관 배급문제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 그 밖에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라 할 독립단편영화 전용관을 5개 광역시 단위로 1개 정도 만들어 다양성의 심화를 꿰해보자.

다양성 영화를 증진하는 것은 문화적인 차원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중요하다. 영화산업은 그 자체로 위기산업이므로 끊임없는 콘텐츠 개혁을 요구한다. 다양성 영화의 제작 자체가 콘텐츠 혁신의 필요조건이다. 미국영화산업이 자체 혁신을 이루는 것도 바로 할리우드 메이저 이외에 수백편의 다양성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를 메이저쿼터/마이너쿼터로 분화하고, 별도의 독립단편영화전용관을 두는 것이 산업적인 콘텐츠 혁신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한류열풍에서 예상되는 아시아시장의 진출에서 우리가 새로운 패권주의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공동제작협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미국이 강요하는 일방적 세계화, 자유롭고 불공정한 경쟁정책에 맞서서 ‘호혜적인 개방’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상호발전과 문화다양성을 증진하는 세계화’를 촉진할 수 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는 이런 모든 이유에서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할 뿐 아니라, 마이너리티 쿼터로까지 발전해야 한다. 이미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이 제도를 대안적 세계화의 모범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 우리는 이를 통해 21세기 문화경제의 최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인들이여 자부심을 갖고, 미국의 공갈협박과 “약체정부”에 당당히 맞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