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카세트 테이프를 구입한 이후로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미디어는, 책과 노트에서부터 각종 테이프와 디스크들을 거쳐 지금의 메모리칩과 디지털 파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저장매체의 변화에 따라 저장방식도 변화해왔다. 미디어의 발전의 목적은 콘텐츠의 빠른 복제와 이동, 보관이다. 그 파급으로 이전의 원시적 미디어를 제조, 판매하던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대표적으로 지금 음반시장은 완전히 기존의 음악유통시장이라는 기득권을 거의 상실했다. 음반회사들은 대부분 망했고,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 mp3라는 전혀 새로운 기록방식과 그것을 손쉽게 저장할 수 있는 다양한 개인용미디어의 등장으로 더이상의 상업적 특권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CD가 등장하면서 LP가 몰락했듯이, mp3의 등장은 CD를 몰락시킬 것이다.
음반시장은 죽었다. 그렇다면 음악의 시대가 위기를 맞는 것인가? 천만의 말씀.CD 판매 사업자에게는 운명적인 몰락의 시기가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음악 자체를볼 때는 요즘처럼 음악이 많이 들리고 소비되고 유통된 적이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mp3처럼 쉽게 음악을 접하고, 보관하고, 나눠갖기 좋은 미디어는 일찍이없었다. 그것은 전화기 속에도 넣을 수 있고 한손에 쥐는 전용 플레이어에 수만곡을 넣을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는 것은 mp3에 밀리는 CD라는 구미디어일 뿐 음악의 전성시대는 새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음반시장은 분명 위기에처해 있지만 그것을 음악의 위기로 비약하는 것은 어리석은 예견이다. 가정용 비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이제 극장들은 다 망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비디오의 보급과 홈시어터에의 열망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동기가 됐고,영화산업은 훨씬 더 발전했다. 미디어가 육신이라면, 예술은 영혼이다. 예술은 육신을 바꿔가며 환생을 하는 영혼처럼 미디어를 바꿔가며 다시 태어난다. 미디어가바뀔 때마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는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라. 만약 당신이 뮤지션이라면, 음반 판매업자의 전속직원이 아니라 예술가라면, 음반시장의 몰락을 보며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미디어로 다시 도래하는 음악의 시대를 바라보며 그 위에서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