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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묻지 않으리
2001-06-13

비디오 카페 79

‘비디오 카페’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떡을 해서 이웃 상가에 돌리고, 고객 사은품을 준비하고, 간판 바꾸고, 홍보용 전단 제작하느라 무척 바쁜 한주를 보냈다.

간판을 바꾸게 되면서 사사로운 승강이가 벌어질 것이 예상돼 나의 얼굴은 벌써부터 짓궂은 미소가 번진다. 자주 오는 고객은 “왜 바꿨느냐?”는 질문을 반복할 테고(아뿔싸! 수천명이 넘는 고객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몇만원씩 되는 연체료 때문에 그동안 오지 못하던 고객은 “주인 바뀌었냐?” 하며 천연덕스럽게 다시 찾을 것이다. 이들의 미안함과 어색함을 약간이라도 덜어주고자 이번 홍보용 전단에 ‘무료대여권’말고도 ‘연체료 삭제 쿠폰’을 만들었다. 그 쿠폰을 가져오면 연체료 때문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면’을 취하겠다는 나의 배려이다.

연체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습관적으로 연체를 하기 때문에 “그런 이들은 안 오는 것이 돕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여점주들도 있지만, 우리 지역의 경우 IMF 이후 주변 대여점들이 거의 문을 닫아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이 무척 컸을 것이다.

며칠 전, 꽤 많은 연체료와 분실한 비디오 때문에 대여점에 오지 않는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남의 물건을 대여해 가서 분실한 채 해결 안 하면 일종의 범법행위다. 조금이라도 연체료를 내고, 다시 대여점에 오라”고 한 적이 있는데, 며칠 뒤 그 학생의 엄마가 다짜고짜 대여점에 들어서면서 “네가 내 딸한테 협박했니?” 하는 것이다. 엄마의 ‘오버’로 그 학생은 더욱 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그런 수모를 겪고도 이 참에 다 용서하기로 했다. 연체료 때문에 이집 저집을 옮겨다니는 하이에나같은 삶을 사는 여러분들, 웬만하면 연체료 내고 새출발하는 마음으로 이전의 대여점을 다시 찾으십시오.이주현|비디오 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