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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얼마 전 일본의 평화박물관 몇곳을 둘러볼 기회를 만들었다. 세계 최대의 전쟁기념관은 있으나, 아이들 손잡고 평화를 만지고 느끼고 숨쉴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현실 때문에 뜻맞는 몇몇 분과 평화박물관 건립운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외국의 평화박물관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평화박물관 가이드북이 나와 있을 정도로 평화박물관이 많은 나라다.

일본의 평화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원자탄 피폭과 주요 도시에 가해진 공습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졌고, 부질없는 짓일지라도 어머니는 아이를 감싸안았다. 네이팜은 하늘에서 붉은 비처럼 쏟아져내렸고, 그들의 일상은 처절하게 파괴되었다. 시계는 그렇게 멈춰버려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 관람객을 맞는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공습과 원폭으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당했던 고통과 공포의 기억을 후대에 전하려 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일본의 여러 평화박물관을 돌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고통을 보는 동안 무언가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이 범한 가해의 역사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고통만을 특별하게 생각할 뿐 다른 사람들도 내가 당한 고통과 비슷한 일을 당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일까? 내가 당한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피해자의 고발보다 생생한 고발은 없다. 우리가 피해자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둔감하다면 피해자라는 위치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홀로코스트, 유대인들이 나치에 당한 것은 아마도 20세기의 잔혹사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일이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세운 이스라엘은 이제 중동의 깡패국가가 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학살과 점령과 박해를 가하고 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알아준다’는 말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는 놈이 더하다’란 말이 더 맞아떨어지는 법인가보다.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일본의 평화박물관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부러운 점도 많았지만 절대로 따라가서는 안 되는 점도 하나 확인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반이 다되어가건만, 우리가 가본 일본의 대표적인 평화박물관 중에 이라크 문제를 다룬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우리가 만난 일본의 평화박물관 관계자 중 우리와 비슷하게 이라크 파병에 대해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건립추진위원회’였다. 그들이나 우리나 아직 평화박물관 건물을 짓지 못한 처지이니, 집없는 달팽이 두 마리만 적극적으로 이라크 전쟁의 고통과 책임을 껴안으려 하고 있는 꼴이었다.

도쿄와 오사카 공습 사진을 보면서 나는 바그다드에서, 팔루자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공습이 떠올랐다. 태평양 전쟁의 몇배 심한 폭격이 자행된 북녘 땅, 인구 40만명의 도시에 42만발의 폭탄이 떨어진 평양이 떠올랐다. 왜 효순이, 미선이를 기리는 촛불집회에는 10만명이 모였지만, 이라크에 또 다른 효순이, 미선이가 생기는 것을 막자는 반전평화집회는 1만명을 넘기기 어려운 것일까? 고통에도 국경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 일본이나 자신의 고통에만 매몰되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고통의 기억이 일국화되고, 특수화되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지난해 숱한 폐인을 낳았던 드라마 <다모>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명대사를 낳았다. 고통의 연대, 즉,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됨을 막는 일이야말로 평화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며, 우리가 세우려는 평화박물관의 기본정신이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착한 마음들이 손을 잡는 ‘고통의 연대’를 통해서만 우리는 평화에 대한 위협에 맞설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삼는 ‘고통의 연대’ 대신 나의 고통만을 내세울 때, <다모>의 명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니가 아프다고? 난 더 아파!”나, “아야야, 에이 씨, 너도 한번 당해봐라!”와 같은 팍팍한 싸움만이 일어날 뿐이다. 그러면 ‘고통의 연대’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글쎄, 특별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고통받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쳐버린 사람들은 적어도 ‘고통의 연대’라는 숙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닐까? 고 김선일씨의 마지막 눈빛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이 파병에 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길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이 21세기의 참된 용기이다.

(영화 보러 갈 시간도 없으면서 영화잡지에 글을 쓰게 되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제 짐을 벗으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 평화박물관에 놀러오세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