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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정성일, 귀여니를 만나다 - 인터뷰 지상중계 [1]
김혜리 2004-08-03

두 사람은 모두 긴장해 있었다. 갑작스런 귀여니의 여행으로 부랴부랴 앞당겨 이루어진 만남의 자리에서, 귀여니 팬클럽 회원인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책 속표지에 작가의 사인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작가 귀여니는 오늘의 인터뷰어가 연초에 <씨네21>에 쓴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에 대한 심오한 글의 기억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잡고 있었다. “백문백답은 어떨까요?”라는 정성일 평론가의 제안은 비유가 아니었으니, 여기 실린 짧지 않은 문답은 실상의 절반 정도다. 네 시간에 육박하는 기나긴 미팅 끝에, 믿을 수 없지만, 두 사람은 꼭 다시 만나자고 맞장구를 쳤다.

정성일 l 왜 이윤세라는 본명 대신 ‘귀여니’라는 아이디를 썼나요? 자신이 스스로를 귀여니로 부르는 건 ‘재수 털리는’ 일 아닌가요? *^^*

귀여니 l 누가 내가 쓰는 걸 알까봐 이윤세라는 이름을 올리기에 창피한 거예요. 동생 메일을 매일 읽었는데 동생 여자친구 닉네임이 귀여니였어요. 무난하다 싶어 썼어요.

정성일 l 충북 제천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니까 친구도 없고, 그래서 인터넷을 벗삼아 지내다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일기라는 형식도 있을 텐데 소설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어요?

귀여니 l 솔직히 일기도 썼는데 내가 읽어봐도 재미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쓰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내가 마침 고등학생이니 고등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한 꿈같은 얘기들을 쓰게 됐죠.

정성일 l 맨 처음 글을 올린 건 언제죠?

귀여니 l 고등학교 1 학년 여름방학 때요. 처음에는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모르고(ㅠ.ㅠ) 내가 걸릴 위험이 없어서 주변 인물 얘기도 넣고, 욕도 막 넣고(0_0), 아무 생각없이 그런 거예요.

결손가정과 죽음(T.T)에 대한 테마

△ <그놈은 멋있었다>

정성일 l 첫 번째 궁금한 점. 영화가 된 두권의 소설(<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과 <도레미파솔라시도> <내 남자친구에게>까지 읽고 느낀 첫인상은 결손가정에 대한 관심이에요. 주인공이나 남친의 집이나. 하여튼 누군가의 집이 가정적으로 부서져 있는데요.

귀여니 l 무의식적으로 제 어릴 때 경험이 많이 반영된 거예요. 가끔 나랑 동떨어진 걸 쓰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녹아들어요. 제가 고1 때인가, 중3 때인가 좀 힘들어서 제천으로 가게 됐거든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많았어요. (ㅠ.ㅠ) 경제적으로나, 가족관계상으로나 (비밀, 비밀!!). 제천에서 태어나서 바로 이사를 서울로 갔는데, 이사다니면서 살다가 고1 때 1년간 제천으로 내려가 있었어요.

정성일 l 그럼 마음속에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어디에요?

귀여니 l (망설임 없이) 수지요. 한 여섯 군데 옮기며 살았는데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낸 곳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정성일 l 대한민국 소녀들이 다 그렇게 이사다니면서 사는 건 아닌데, 자신이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대한민국 평균소녀 속에서 어떤 존재 같아요?

귀여니 l 내가 아무리 자신이 당시 불행하다 한탄해도, 이상하게 주변에 부모가 돌아가신 애들 보면 또 내가 그렇게 불행하진 않구나 생각되고, 내가 또 행복하다고 생각해도 둘러보면 으리으리한 집에서 멋진 남자친구에 공부도 일등이고 얼굴도 예쁜 애들이 있었어요. 결국 난 평범했던 것 같아요. 성격은 엉뚱한 부분이 있지만. ㅋㅋ

정성일 l 두 번째 질문은, 하여튼 누군가 죽어요. 심지어 <늑대의 유혹>은 정태성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죽을 거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 이 긴 소설이 내내 죽음의 그림자에 가득 차 있다는 것, 열 여덟살 소녀가 죽음을 끌어안고 소설을 썼을 때 이건 뭘까 궁금했어요.

귀여니 l 그때 내 사고방식에 의하면, 누군가 죽으면 그 소설은 굉장히 슬퍼지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독자를 울릴 게 없었어요.

정성일 l 그런데 <늑대의 유혹>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명랑한 <그놈은 멋있었다>도 아버지가 에이즈로 죽어야 돼요. <내 남자친구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죽음이 본인에게 테마라고나 할까, 강박관념이라고 할까?

귀여니 l 제가 죽음에 대해서는 되게 생각이 많아요. 웃긴 걸 수도 있어요. (나도 알아!!) 어린 나이인데, 죽는 거랑 사는 게 가장 큰 저의 관심사거든요.

정성일 l 사랑보다?

귀여니 l 사랑보다도! 어릴 때나 커서나 주변 사람들이 많이 죽거나 돌아가시는 걸 봤어요.

정성일 l 앞으로도 계속 소설 속에서 죽어나갈 건가요? (허걱!!)

귀여니 l 피해야죠, 이젠. 그래서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선 안 죽었구요. 이젠 거기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줘야지요.

외국ㆍ공항에 대한 동경(@@), 강원도의 힘

△ <늑대의 유혹>

정성일 l 읽으면서 세 번째 이상한 건, (신기! 신기!) 하여튼 누군가 외국에 가야 하거나 떠나야 하는, 외국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지리적인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바깥이라는 것에 대한 그 어떤 탈출의 의지?

귀여니 l 그때 사고방식으로는 도피처였어요. 여기서 안 되고, 힘들어 죽겠으면 외국으로 나가라. 그럼 모든 게 풀릴 것이다! (어록?) 그때는 제가 절대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허락도 안 해주고 (ㅠ.ㅠ) 한국보다는 다른 나라, 특히 이탈리아 같은 데 가서 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아요.

정성일 l 그런데 외국에 내보냄으로써 주인공이 문제와 마주쳐야 하는 걸 피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귀여니 l 솔직히 여주인공 네명 다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고 문제가 있으면 부딪치려고 하지 않고 슬금슬금 남자 등에 아니면 부모 등에 숨거든요. 그들이 날 닮았으니 그런 점은 인정을 하죠.

정성일 l 21세기 대한민국 소녀들은 그런 우유부단한 소녀들에게 공감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나요?

귀여니 l 그 반대지요. 공감할 거라고 믿음을 가진 게 아니고 쓰고 보니 공감을 하더라구요. 그렇게 깊이 생각해서 쓴 게 아니에요. 내가 겪는 고민을, 내가 겪은 하루를 소설로 과대포장했을 뿐인데 의외로 10대들은 공감을 했던 거예요.

정성일 l 거기에 더해 남자주인공들은 무언가 괴로워지고 안 풀리면 강원도나 동해에 가요.

귀여니 l 진짜요? (@@)

정성일 l 그러고 나면 동해와 강원도에 지리적인 동시에 시간적 점핑으로 건너뜁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불가능에 대한 상상적 가능이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두편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왜 동해를 가는지 잘 몰라요. 그래서 설명이 안 되지요.

귀여니 l (한참 생각! 생각!) 그건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걸, 잊어먹었던 걸 말씀하셨어요. 그건 저도 확실히 설명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게 제가 동해 바다밖에 못 가 봤어요. 일곱살 때 처음 갔어요. 부모님하고 같이.

정성일 l 그뒤 혹시 혼자 간 적도 있나요?

귀여니 l 아뇨. 없었어요. 여행 자체를 혼자 해본 적이 없어요.

정성일 l 하나 더. 귀여니 소설의 공간적 특징 중 하나인데, 이상하게 자주 나오는 게 공항이에요.

귀여니 l 공항, 정말 제일 좋아해요. 외국에 간다고 하면 다른 나라에 도착하는 설렘보다 공항에 간다는 부분이 커요. 처음 간 건 지난해 4월에 일본 여행갈 때. 너무 좋았어요. 소설 썼을 때는 꿈만 꾸고 있을 때예요. 우리나라를 떠나는 하나의 발판으로 생각했어요.

정성일 l 떠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군요.

귀여니 l 네, 저는 지금도 꿈이 글쓰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가예요.

정성일 l 그걸 소녀들의 꿈이라고 생각하세요?

귀여니 l 아니오. 귀여니의 꿈이에요! (당당!!) .

정성일 l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소녀였나요?

귀여니 l 절대 안 그랬어요. (ㅠ.ㅠ) 오히려 고1 때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으니까 사랑받을 시간도 없었고…. 제천에서는 동생이랑 고2, 고3, 2년을 있었으니까요.

정성일 l 귀여니는 남자주인공들에게 관심이 많은 작가예요. *^^*. 근데 그 남자들이 싸움을 잘한다는 것에 굉장히 매력을 갖는 거 같아요. 남자가 싸움을 잘한다는 게 귀여니의 여자주인공들에겐 어떤 매력 포인트인가요?

귀여니 l 남자다운 남자, 여자가 봐서가 아니라 남자가 봐서 멋있는 남자를 되게 좋아했어요. (흠!!) 중·고생 입장의 제가 봤을 땐 남자다운 남자는 짱인 남자, 싸움 잘하는 남자라고 아예 공통점을 찾아버렸어요. 그런데 주변에 싸움 잘하면서 잘생긴 남자는 찾을 수 없었거든요. (ㅠ.ㅠ) 그래서 소설을 통해 그린 거예요.

정성일 l 싸움을 잘한다는 게 두려울 수도 있잖아요?

귀여니 l 저만 안 때리면 되니까요. (허걱!)

정성일 l 그 얘기가 심금을 울리네요. (이 소녀 무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