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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소박한 이야기의 힘, <행복한 날들>

Happy Times 2000년

감독 장이모 출연 자오벤샨

<캐치온> 9월4일(토) 오전 8시

중국영화 하면 일반적으로 현실반영적인 작품이 연상된다. 5세대 감독인 장이모와 첸카이거, 그리고 이후 6세대 감독들까지 그 정치적 노선에 관계없이 중국의 변화하는 현실,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은 영화를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문화혁명 등 역사적 사건에 관한 상이한 해석이 중국 감독의 세대구분에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날들>은 장이모 감독이 만든 의외의 소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작고 소박한 드라마를 짜맞추는 능력이 남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정년퇴직해 어렵게 살고 있는 50대의 자오. 그는 두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중년 여인에게 빠져 청혼한다. 자오가 큰 호텔의 지배인인 줄 알고 있는 여인은 지참금으로 적지 않은 돈을 요구한다. 자오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후배와 함께 버려진 버스를 ‘해피 타임 호텔’이라는 간이 여관으로 개조해 연인들에게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하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다. 어느 날, 여인의 집에 찾아간 자오는 그녀의 의붓딸 우를 만난다. 시각장애 소녀인 우를 탐탁지 않아 하던 여인은 우를 취직시켜달라고 그에게 떠맡기고 자오는 하는 수 없이 내키지 않지만 우를 데리고 온다.

<행복한 날들>은 자오라는 중년 남자와 시각장애 소녀인 우가 만나 엮어가는 짧은 이야기다. 소박한 내러티브지만 호소력은 남다르다.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거짓말’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결혼하기 위해 자오는 스스로 돈 많은 사람인 듯 꾸며야 하고 우를 속일 수밖에 없는 것. 자오의 버스는 폐차되고 어쩔 수 없이 함께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 자오는, 그녀가 안마사로 취직한 것처럼 만들기 위해 엉성하지만 안마 시술소를 차린다. 그런데 거짓말은 차츰 불어나 눈덩이처럼 커진다. 다른 이들을 시켜 안마를 받게 한 뒤 가짜 돈을 우에게 쥐어주면서 속이는 식이다. 하지만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는 자신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오와 함께한 순간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자신의 이별의 목소리를 테이프에 담는다. 영화에서 기묘한 순간은 이때 찾아온다. 자오가 쓴 마지막 거짓 편지, 그러니까 우의 아버지인 듯 꾸미고 쓴 편지를, 다른 이가 우의 음성이 담긴 테이프를 돌리면서 낭독하는 것이다. 소박한 이야기의 힘, 감정적 울림이 배가되는 순간이다.

장이모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중국의 현실처럼, 변화무쌍하다. <붉은 수수밭>(1987)이나 <귀주이야기>(1992) 등의 영화는 중국 리얼리즘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들으면서 장이모 감독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선사했다. 근작들이자 소품인 <집으로 가는 길>과 <행복한 날들>에 이어 <영웅> 등의 대작영화에선 그가 남다른 상업적 안목까지 겸하고 있음을 입증한 적 있다. <행복한 날들>에선 <씬 레드 라인>의 테렌스 맬릭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으며 미국 개봉시 <뉴욕타임스>는 “현명하고 친절하며 게다가 슬픈 영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