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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의 가장 비극적인 소나타, <파리의 여인>

Woman of Paris 1923년

감독 찰리 채플린 출연 에드나 퍼비언스

EBS 9월19일(일) 오후 2시

채플린이 만든 영화가 모두 코미디일 거라 짐작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는 언젠가 “웃음은 눈물과 혹은 눈물은 웃음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시티라이트>나 <모던 타임즈> 등 그의 대표적 코미디영화 역시 짙은 비애감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 갈 곳 없는 떠돌이의 고단한 삶, 그리고 현대 문명에 대한 예리한 풍자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여인>은 채플린이 감독한 영화이지만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연출한 이 한편의 비극적 작품에, 희극인으로서 출연하고픈 뜻이 별로 없었으리라.

<파리의 여인>은 어느 여성의 사랑에 관한 영화. 마리는 애인 장과 도망치기로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는 탓에 장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마리 혼자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사교계에 등장한 마리는 소문난 부자 리벨과 가까워진다. 어느 날 우연히 파티장에서 장을 다시 재회하게 된 마리는 장과 결혼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연민 때문에 결혼한다”고 장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결혼을 포기한다. 리벨에게 돌아온 마리는 전보다 더 화려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장은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출연하지 않는 나의 첫 번째 비극.” 채플린은 <파리의 여인>에 대해 이렇게 논했다. 이 영화가 공개됐을 당시 반응은 여러 가지로 다양했다고 전해진다. 떠돌이 채플린의 연기에 익숙해진 관객은 심각한 신파극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으며, 반면 비평가들은 채플린의 새로운 재능을 알아보았다. 운명적으로 어긋난 길을 걷는 연인들, 그리고 누군가의 자살로 이어지는 영화 속 이야기는 고전적이며 채플린의 영화 중 가장 비극적 색채를 품는다. <파리의 여인>은 섬세한 디테일을 눈여겨볼 만하다. 상류층 사람들의 화려한 삶을 그들 의상과 세트, 그리고 음식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점에서 채플린은 <눈먼 남편들> 등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초기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잉그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에 출연했던 배우 리브 울만은 이 영화에 대해 “채플린의 영화엔 착한 남자와 악한 남자, 착한 여자와 악한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 속에서 그저 삶의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설명한 적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