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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면 다인가? ‘만화로 보는…’시리즈 열풍을 비판한다

가히 기획만화의 봄이다. 이처럼 많은 만화들이 기획된 적이 없었다. 밀리언셀러는 대부분 만화들이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다. 많은 돈이 흘러다닌다. 그런데 이 많은 기획만화(학습만화)의 모양을 살펴보면 판박이처럼 똑같다. ‘번안’에 머무르고 있다. ‘만화’는 단지 원작을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책들에는 동일한 수식이 붙는데, “만화로 보는…”이 그것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로 보는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만화로 보는 좋은 생각> <만화로 보는 세계민속 어드벤처> <만화로 보는 쿠오바디스> 등등. 이런 번안만화는 대부분 ‘좋은 만화’를 고민하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원작’을 고민한다. 만화는 단지 번안의 도구이기 때문에 개성이나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한 화면을 ‘빠르게 생산’하게 된다. 많은 기획자들이 만화와 원작의 조화나 원작의 새로운 해석보다는 발빠른 기획을 최고로 생각한다. 당혹스럽게도 뭔가가 유행한다 싶으면, 번안만화가 재빠르게 등장한다. 원작의 유행에 편승하겠다는 전략이다. 단순, 명쾌한 기획이다. 문제는 완성도인데, 어린이들은 익숙한 작화에 컬러를 습관적으로 보고, 재미있어한다. 이제, 구매자인 어머니만 유혹하면 되는데, 그래서 명작의 탈을 쓴다. 만화가 명작이 아닌데, 원작을 빌려 그 허점을 채운다.

이런 와중에 이가서의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이 1권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이원희 작화)을 시작으로 송기숙 <녹두장군3>(백철 작화)까지 총 27권 출간되었다. 지난해부터 출간되었지만 대단한 분량이고 만만치 않은 기획이다. 원작도 이효석이나 현진건에서 박완서, 이청준을 거쳐 신경숙, 이창동까지 다양하다. 당대의 한국 소설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들어간다. 대부분 읽는 재미가 출중한 원작을 번안해 재미있게 읽힌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리즈의 모든 만화가 ‘만화로 보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책의 겉표지에 적힌 이청준의 지적처럼 이 “작업은 단순히 소설을 만화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중략) 새로운 매체로 재구성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서사의 틀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작화나 연출도 익숙한 전형적인 학습만화 스타일이다. 1페이지를 3단으로 나누는 칸 나누기는 연출의 박력을 전하지 못하고, 디지털로 빠르게 칠해진 컬러는 어느 작품이나 개성이 없다. ‘만화’를 제대로 사고하고, 그 안에서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기획만화가 나올 때다. 공산품 만화는 쉽게 질린다. 지금은 흥해도 독자에게 언제 외면받을지 모른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