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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미소는 영원히
2001-06-21

컴퓨터 게임 - 게임과 좀비

좀비는 살아 있는 시체다. 부두교의 흑마법에 의해 주술사의 노예 노릇을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좀비라는 게 실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분명한 건, 좀비란 게 없었으면 호러영화, 특히 B급 호러영화 역시 성립하지 못했을

거란 사실이다. 좀비는 영화뿐 아니라 게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꼭 호러게임이 아니라도 그렇다. 롤플레잉게임에서 세계를 구한다는 골치아픈 사명을 갖고

정든 고향 마을을 떠나는 주인공을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게 좀비다. 별로 대단한 놈은 못 되고, 머릿수로 버티면서 아직 미약한 주인공의 레벨

올려주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롤플레잉게임뿐 아니라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이나 <마제스티>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에도

좀비는 하급 몬스터로서 제몫을 단단히 한다.

때로는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종횡무진하며 썩은 미소를 과시하기도 한다. 제일 유명한 게임은 <바이오 해저드>다. 일본 ‘캡콤’이

만든 3인칭 액션어드벤처게임으로, 생체 병기를 연구하는 사악한 집단(역시 호러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손님이다)과 맞서 좀비를 비롯한

수많은 돌연변이 괴물들을 해치워야 한다. 등골이 쭈뼛쭈뼛한 스릴과 공포, 그리고 좀비들의 열연에 힘입어 수백만장을 가볍게 팔아치웠다.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역시 이름 그대로 좀비들이 쏟아져나오는 게임이다. 설정이나 진행은 <바이오 해저드>와

다를 게 없지만 이번엔 1인칭시점이다. 그리고 원래 오락실게임으로 출발해서 그런지 스릴과 공포보다는 통쾌한 액션이 우선이다. 무시무시한 제목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는 <좀비 리벤지>는 두 게임의 중간쯤 어딘가에 있는 게임이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다양한 게임에 나오는 좀비들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덥수룩한 머리에 돌출된 안구. 하의는 대개 블루진이고 상의는 너덜너덜한 체크무늬 셔츠거나 화끈하게

벗었다. 다리 하나쯤은 성하지 못해 질질 끌다보니 움직임이 굼뜬 편이고 때로는 파리떼를 몰고 다니기도 한다. 무기는 별다른 게 없고 그냥 손톱이나

이빨을 쓰는데 어깨를 늘어뜨리고 목은 쭉 빼고 두팔을 들고 몰려오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강시를 연상시킨다(그러고보면 강시도 일종의 좀비다).

게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 <파랜드 택틱스>같이 일본풍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는 게임에서는 좀비 역시 상당히 미화되어 등장하고,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의 좀비들은 멀쩡히 산 사람인 게이머보다 더 재빠르게 움직여 화면을 피범벅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좀비든 오른쪽으로 30도 꺾어진 고개는 마찬가지다. 누가 좀빈지 아닌지 구별하려면 고개를 기울여놓고 다시 올라오나 아니나만 체크하면 된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천하장사 소시지처럼 보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핑크색 칠부바지를 입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머리 방울을 1십만원 가까운

돈을 주고 산다. 하지만 싫증도 쉽게 낸다. 지난해엔 없어서 못 팔던 킥보드가 올해는 반값으로도 임자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좀비는 다르다.

딱 붙는 블루진을 벗어던지고 힙합이나 나팔바지에 풍선껌을 질겅거리며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정겨운 30도 삐딱한 고개로 초반 지루한 게임 여정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고 영원하지만 좀비는 벌써 썩었어도 영원하다.박상우/ 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