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2001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2001-06-22

알프스에 피어난 애니 유토피아

■ 빌 플림턴의 <돌연변이 외계인> 장편 대상, 손그림으로 3D 강세를 뚫다

Annecy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Animation

지난 6월4일부터 프랑스 안시의 스크린을 수놓은 움직이는 그림들의 잔치 ‘2001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6월9일 막을

내렸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접경에 자리한 안시는 알프스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호수를 품은 그림 같은 경치로 이름난 자그마한 휴양도시. 파리에서

고속열차 TGV로 3시간40분, 혹은 제네바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쯤 달리면서 울긋불긋한 삼각지붕과 농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도 거닐 법한

잔디언덕을 지나면 40여년 전통의 애니메이션 축제의 고장 안시에 이른다. 비엔날레에서 97년부터 연례행사로 바뀐 뒤 25회째를 맞은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주행사장인 안시 호숫가의 봉리유센터를 중심으로 시내 8개 상영관에서 치러졌다.

“안시가 좋은 것은 모든 테크닉과 주제를 볼 수 있어서”

안시의 6일 밤낮을 장식한 애니메이션은 장편과 단편을 합쳐 모두 400여편. 비공식부문을 제외하고 경쟁부문과 파노라마로 구성된

공식부문에만 각국에서 1070편이 출품됐고, 그중 본선에 선정된 242편이 관객과 만났다. 지난 3월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해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 작가 마이클 두독 드 비트의 <아빠와 딸>, 섹스와 폭력과 인체를 엽기적인 유머감각으로 난도질하는 미국의 독립애니메이션작가

빌 플림턴의 장편 <돌연변이 외계인> 등 기성작가들의 신작과 신진들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공식부문, 특히 경쟁부문에서는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표정과 최근 동향을 읽어낼 수 있다. 종이와 셀에 그리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이나 요즘 주목받는 3D 컴퓨터애니메이션은 물론, 인형,

점토, 모래, 유리 위의 그림 등 갖가지 연금술로 세공해낸 이미지들은 보는 이의 시각적 상상력의 영토까지 넓혀놓을 만큼 다채롭다. 학생·졸업작품

심사위원으로 안시를 찾은 <프린스 앤 프린세스>의 감독 미셸 오슬로는 “안시가 좋은 것은 모든 테크닉과 주제를 볼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핀스크린의 대가 알렉산더 알렉세이예프의 회고전, 영국애니메이션의 70년사를 돌아보는 브리티시애니메이션

특별전 등 비공식부문까지, 1908년작 <드림스 오브 토이랜드>부터 최신작에 이르는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시는

애니메이션 관객에게 아주 풍성한 잔치다. 올해에도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5천여명의 애니메이션 관계자와 10만여명의 관객들이 작은 도시의 초여름을

부산하게 흔들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의 바다에서 하나의 흐름을 읽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난 몇년 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3D와 인터넷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은 안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학생·졸업작품 등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3D 애니메이션이 늘어났고, 3D와 쌍방향 인터넷애니메이션

등 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 시대에 대한 논의가 곳곳에서 활기차게 진행됐다. 인터넷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비공식부문을 올해 신설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결과였다. 페스티벌 기간중 임페리얼호텔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 견본시 MIFA에서도

전체 670여 참가업체 가운데 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 관련업체와 3D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MIFA의

책임자 뱅상 페리는 이 마켓이 “작품을 사고팔고 합작을 모색하는 시장이자,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전시장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물론 3D를 앞세운 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비교적 간편하고 저렴해 효율적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종이없는(paperless)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테크닉에 치우쳐 내용이 비는 경우가 많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대체로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고유한 이미지의 세계를 가꿔온 개인작가들을 격려해온 안시에서 3D는 마법의 도구가 아닌 듯하다. 영화제 데일리의 카툰에 등장한 고양이는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과 기술의 미래에 관한 불안이 충돌하는 안시의 심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좋아. 나도 이젠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겠어. 컴퓨터가

3D를 향상시켰다고 하니까!” 컴퓨터와 씨름하던 고양이는 다음 장면에서 “문제는 이 짜증나는 마우스를 어떻게 쓰는지 아직도 모른다는 거야!”라며

마우스를 부숴버린다.

그래도 애니는 손맛이 최고

어쨌든 올해 페스티벌도 작가의 손맛이 어린 전통적 기법에 가까운 작품들의 손을 들어줬다. 최고의 화제작은 아버지와 헤어진 딸의 기다림을 연필과

목탄의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낸 <아빠와 딸>(Father

& Daughter). 소녀에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도록 번번이 자전거를 끌고 이별의 장소로 가는 딸의 애틋한 그리움이

대사없이 간명한 그림체와 명암, <다뉴브강의 잔물결> 등 서글픈 슬라브 민요풍 멜로디를 타고 가슴을 파고드는 이 작품은 상영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결국 단편부문 대상에 관객상까지 차지했다.

단편 외에 장편, TV, 광고, 학생·졸업작품 등 다른 경쟁부문 수상작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장편부문 대상은 우주로 방출됐던 우주비행사와

실험체 동물들이 복수를 위해 지구로 돌아온다는 빌 플림턴의 셀애니메이션 <돌연변이 외계인>(Mutant

Aliens)에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로 알려진 플림턴이 이번에도 섹스와 폭력을 엽기적인

상상력으로 비튼 블랙코미디로 미디어에 대한 유쾌한 풍자를 담아냈다. 갓 죽은 시체에서 해골까지, 죽음 이후에 적응해가는 영혼을 코믹하게 담은

멕시코산 점토애니메이션 <다운 투 더 본>도 완성도 높은 만듦새로 단편 데뷔작에 주어지는 장 뤼크 시베라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안시의 단골손님으로 이번에도 단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폴 드리센의 <빙산을 본 소년>, 공식수상은 아니지만 특별 언급된 필 멀로이의

<편협함>(Intolerance)과

<낯선 침입자>(Strange Invaders)

등이 주목할 만한 작품들. 플라스틱 모형을 움직여, 케이크를 두고 싸우는 말과 인디언과 카우보이의 삼파전을 그린 TV부문 대상작 <케이크>(Cake)와

힘세고 엉뚱한 기사 형제의 포복절도할 모험으로 동부문 시리즈 특별상을 수상한 미국의 인기 TV시리즈 <빅 나이트>(Big

Nights)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작품들은 경쟁부문 진출작 3편을 포함해 모두 7편이 본선에 올랐으나 수상작에 들지는 못했다. 그중에서도 각각 학생·졸업작품과 단편경쟁에

출품된 <아빠하고 나하고>와 <오토> 등은 몇몇 애니메이션작가들과 관객에게 비교적 호평을 들었다. 학생·졸업작품 대상은

갑자기 여자가 된 남학생의 이야기를 만화체 2D로 그린 프랑스 단편 <제랄딘>(Geraldine)이,

심사위원특별상은 학생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완성도와 3D임에도 차가운 금속성의 느낌을 줄이고 2D처럼 만든 <AP

2000>이 수상했다. 수상은 못했지만, 전선 위의 새떼를 소재로 한 픽사의 코믹한 3D 단편 <포 더 버즈>(For

the Birds)도 인기를 끌었으며, 수수께끼의 뱀파이어 헌터 소녀를 그린 일본장편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Blood

the Last Vampire)도 아니메가 거의 없었던 안시에서 일반 관객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 매진을 기록했다.

문턱이 없는 만인의 축제

아침부터 새벽 1시까지 수십편의 애니메이션이 스크린에 피고 지는 동안, 상영장 밖에서도 축제는 계속된다. 봉리유센터 앞 잔디밭에 설치된 야외스크린에서는

<치킨 런> 등 대중적인 장편작품을 틀어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까지 붙잡았고,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야외상영을

즐기러 몰려들었다. 거기서 약 20분 거리의 안시성에서는 6월 한달간 아드만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올 안시의 야심작이다. 피터 로드와 데이비드

스프록스턴, 두 영국 청년의 부엌에서 탄생한 아드만 최초의 캐릭터 아담부터 세계적인 팬을 거느린 월레스와 그로밋의 거실, 트위디 부인의 농장과

닭들 등 오밀조밀 손끝으로 빚어낸 아드만의 점토왕국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전시회는 아드만애니메이션특별전과 함께 가족 관객에게 특히 인기를

누렸다. 게스트로 초대된 피터 로드는 “‘애니메이션의 중심’인 안시에 초대받아서 영광”이라며, “내가 다른 종류의 사람, ‘특별손님류’의 인간이

된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안시의 ‘특별손님’들은 턱시도를 입지 않는다. 수장 피터 로드도, <키리쿠와 마녀>가 비디오로 50만개씩 팔리는 인기를 누리는

미셸 오슬로도, 빌 플림턴이나 마이클 두독 드 비트도 알프스 작은 마을의 아기자기한 길목에서는 모든 격식을 풀어놓는다. 예비작가와 관객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장과의 대화’ 같은 자리들이 곳곳에 마련된다. 방리유극장에서 열린 시상식날. 스크린 앞에는 바와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다. 상을 주러, 상을 받으러 무대에 오르는 이들에게 술 한잔을 권해가며 웃고 떠드는 축제. 안시는 애니메이션의 보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격식과 허세를 벗어버린 자유로운 상상력이란 것을. 프랑스와 영국, 독일, 네덜란드 같은 유럽국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트집잡을 수도 있겠지만, 안시는 언어나 국적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의 잔치인 것이다.안시= 황혜림 기자

▶ 2001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 <아빠와

딸> 미하일 두독 드 비트 인터뷰

▶ 빌

플림턴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