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트(무자파 오즈데밀)는 아내와 헤어진 뒤에 외롭게 지내고 있는 중년의 사진작가다. 한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도 같은 사진을 찍고 싶어했던 마흐무트는 지금은 사진으로 돈을 버는 데 만족할 뿐이다. 지루했던 그의 삶은 고향 마을에서 사촌동생 유스프(마흐무트 에민 토팍)가 올라오면서 아주 조금 흔들린다. 일주일 안에 일자리를 찾겠다고 약속했던 유스프는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너저분한 쓰레기를 늘어놓아 마흐무트의 심기를 건드린다. 유스프도 잔소리가 심해지는 마흐무트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는 선원이 되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삶은 늘어지기만 하고, 도시의 여인들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 자신도 사진작가인 세일란은 터키 서부에 있는 고향 예니스에서 처음 두편의 영화를 찍었다. 마흐무트처럼 타르코프스키를 동경하는 그는, “<작은 마을> <5월의 구름>의 아름다운 이미지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지만, 그리고 <우작>은 여전히 매우 정교한 영화이지만, 도시로 간 세 번째 영화에 이르러 조금 다른 길에 발을 디딘 듯도 하다. <우작>은 오래되어 조금만 손을 대도 부서질 것처럼 보이는 마른 종이와도 같다. 헤어진 아내는 새로운 남편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지만, 공항에 숨어 그녀를 지켜보기만 하면서, 자신은 오도가도 못하는 중년 남자. 마흐무트는 절망이나 고난이 아니라 그저 흐르는 세월 때문에 자신이 가졌던 습기를 모두 잃고 메말라가는 것이다. 세일란은 이 영화가 그 자신의, 그리고 지적이고 부유한 자기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이 매우 많다. 희망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중년이 된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고립돼 있는지 깨닫는다. 나이를 먹고 부유해질수록 감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탁자를 만져도 느끼지는 못한다. 그것이 도시의 문제다.” 침묵, 소외, 고독, 사람을 자신 안에 가두어두는 모든 것들.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는 너무 무거운 침묵을 이기지 못해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세일란을 투영한 마흐무트 반대편에는 유스프가 있다. 그는 마흐무트처럼 외롭고 여자를 원하지만, 혼자서라도 틀어박힐 수 있는 둥지가 없다. 그는 서울에 올라온, 환영받지 못하는 시골쥐다. 세일란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흐무트와 유스프를 지켜보면서 때로 유머를 발견하기도 한다. 마흐무트는 유스프 앞에서는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를 보고,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 몰래 포르노테이프를 본다. 들키지 않으려고 우왕좌왕하는 마흐무트는 산처럼 높았던 이상, 그 근처에도 다가서지 못한 가엾은 지식인을 무뚝뚝하게 희화화한 캐리커처이기도 하다. 타르코프스키와 체호프로부터 영향을 받은 세일란은 이처럼 프레임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어낸 것처럼 섬세하게 촬영했으면서도 희망없는 현실에 기반한 유머 역시 가지고 있다. 유스프가 시계를 훔쳤다고 의심하던 마흐무트가 시계를 발견하고도 살그머니 감추는 장면은 이미지만으로 구축된 긴장과 찌르는 듯한 냉소를 품는다. 그러나 <우작>은 여러 언론이 평가했듯, 현실과 픽션 사이에 놓인, 키아로스타미의 후예이기도 하다. 다만 이 영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존재하리라는 낙관보다는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체념에 가깝다.
<우작>은 200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남우주연상을 탄 에민 토팍은 세일란의 사촌동생이고, 세일란이 영화를 찍을 때마다 본업인 세라믹 공장에 휴가를 얻어 출연하곤 했다. 그 무렵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던 토팍은 <우작>의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 확정된 다음날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의 죽음은 이 영화에 어쩔 수 없는 비극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추운 겨울, 마흐무트의 정사를 위해 밤늦게까지 바깥에 나와 있어야 하는 유스프는 도시에서 살고 있을 젊은 연인들을 처량하게 쳐다만 본다. 그는 공장이 문을 닫아 실망만 남아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화려한 도시에서 자기가 머무를 여백을 찾을 수 없다. 비정한 도시에 상처받은 젊은이. <우작> 개런티로 값싼 자동차를 샀다가 사고로 죽고 만 토팍의 그림자는 말없이 마흐무트를 떠난 유스프 위에 고스란히 겹친다. 세일란은 그런 표정을 지닌 배우를 잃었으므로, 이제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
각본·촬영·편집·제작까지 겸한 터키의 새로운 거장
누리 빌게 세일란은 1959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예니스로 이사한 그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스탄불과 외국을 떠돌 때도 고향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세일란은 보스포로스 대학에서 전기기술을 전공했지만 엔지니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진작가로 일하던 그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고, 브릭스턴에 있는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웨이터 일을 하면서 지냈다. 그를 또 다른 영토로 이끈 것은 히말라야를 찍은 사진 한장이었다. 그는 또다시 네팔과 인도로 떠나 관광객에게 필름을 팔아 먹고살았다. 갑자기 습격해온 향수병 때문에 터키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의미있는 일을 찾지 못하다가 로만 폴란스키가 쓴 자서전을 읽었다. “어쩌면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세일란은 이번에는 미마르 시난 대학에 진학해 2년 동안 영화를 공부했다.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은 그의 데뷔작 <작은 마을>은 터키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삼대로 이루어진 한 가족의 이야기다. 터키 현대사가 사람들의 삶을 치명적으로 왜곡했다고 믿는 세일란은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들은 기억을 사건이 거의 없는 이 영화에 담았고, 부모와 친지들을 배우로 기용했다. 농업기술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내 아들이 또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구나”라는 마음으로 출연해주었다고 한다.
세일란의 두 번째 영화 <5월의 구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됐지만 여기에는 세일란 자신의 모습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영화감독 무자파는 고향 마을에서 영화를 찍으려고 하지만, 그의 부모와 고향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하는 투쟁이 더 절박하다. 여기에 더해지는 소소한 일상, 아름다운 풍경.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세일란은 자신의 우상처럼 정적이고도 시적인 영화를 찍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터키의 새로운 거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세일란은 각본과 편집, 촬영, 제작까지 모두 직접 해결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돈이 아니라 내 돈으로 영화를 찍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말하는 그는 1만5천달러로 첫 번째 영화를 만들었고, 이익까지 남겼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영화제작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