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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마다 ‘참을 인’자를 새겼죠”
2001-06-27

디지털 아티스트 김종보

지난 6월14일 서울 시네코아에서

열린 ‘<파이널 환타지> 인터내셔널 프레젠테이션’이라는 행사는 좀 특별했다. 영화 시사회도 아니고 스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닌 이

행사의 주인공은 디지털 아티스트 김종보(39)씨. 그렇다고 그가 참여한 3D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의 데모 필름이 약 20분가량

상영됐고,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해설이 이뤄진 이날 행사가 지루했다는 뜻은 아니다. 생경한 전문용어가 머릿속으로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이날 공개된 <파이널 환타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웬만한 영화치고 컴퓨터그래픽이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드문 요즘이지만 이 작품 속의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특히 이 3D애니메이션 속

사람의 모습은 그동안 보였던 어떤 그래픽 이미지보다 생생한 느낌을 전달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찰랑거리며 휘날리는 모습, 피부에 스며 있는

잡티와 주근깨, 눈의 홍채나 보송보송한 옷의 질감까지 너무도 정교해 일부 장면은 실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 영화에서 김종보씨는

시퀀스 슈퍼바이저와 애니메이션 워크플로 슈퍼바이저로 활동했고, 후반부에는 34개 신의 컴포지팅을 담당했다. 도무지 알쏭달쏭하기만 한 그의 담당업무를

알아듣기 쉬운 것부터 대충 정리해보자면, 1)그는 실사 화면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이 디지털영화의 스탭으로 참여해 15∼16명의 직원을 이끌었다.

2)그가 담당한 일은 우선 시퀀스 슈퍼바이저로, 이 영화의 36개 시퀀스 중 네 번째 시퀀스에서 어떤 기술적인 요소가 필요한지, 어떤 프로그램을

활용해야 하는지 등을 체크한 뒤 필름으로 뽑아져나올 때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3)또 영화의 각 캐릭터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지 기술적으로 연구해 체계적인 공정으로 확립하는 애니메이션 워크플로 슈퍼바이저 역할도 맡았다. 4)극중 외계인인 팬텀을

애니메이션으로 직접 만들기도 했던 그가 마지막 4개월 동안 한 일은 제대로 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캐릭터, 배경, 각종 특수효과 등의 레이어를

덧입히는 컴포지팅이었다는 것.

대학 시절 회화를 전공하다 2년 만에 응용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꾼 뒤 일본으로 유학, 비디오아트와 동영상,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에 관한 공부를

이어나갔던 그는 윌코라는 일본의 컴퓨터그래픽 회사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디지털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이 업체의

미국 자회사인 모션 신디케이트의 부사장으로 일했고, 격투게임 <토발2>의 동영상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99년에는 <파이널 환타지>의

원조인 게임업체 스퀘어의 미국 지사에 수석급 아티스트로 입사하게 된다. 그뒤 그는 이 업체가 있는 하와이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이 영화

제작에만 매달려왔다.

이토록 생생한 디지털 영상을

뽑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것 중 하나가 ‘인내’였다고 그는 말한다. 점과 선으로만 이뤄진 가장 단순한 그래픽을 레이아웃하는 데서 출발, 실제

사람의 동작을 디지털로 옮긴 모션캡처, 각종 3D 렌더링 등의 과정을 계속 더해가며 질감, 동작 등에 온갖 테스트를 거쳐야 비로소 원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480개가 넘는 요소를 결합한 장면도 있을 정도. 때문에 이 영화의 제작공정 중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인내심이 있어야 제대로

된 화면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인내력 테스트’까지 공식적으로 존재했을 정도다. 이제 영화도 완성됐고 곧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잠시

쉴 만한데도 “사실 이번 작업도 많이 모자랐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의 피부나 근육 이미지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머리카락도 현재의 6만개로는

부족한 것 같다. 또…”라며, 그는 가상적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참을 인’자를 수없이 새겨넣을 각오를 보여줬다.

글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사진 손홍주 기자 light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