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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옷을 입고 쿵! 쿵!
2001-06-27

DJUNA의 오!컬트 ... <킹콩>

디노 디 로렌티스 제작, 존 길러민 감독의 리메이크 버전 <킹콩>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모 어린이 잡지에 실려 있던 <킹콩>의 설계도입니다. 당시엔 디노 디 로렌티스가 실물 크기의 고릴라 로봇을 만들어서 영화에 사용했다고 소문이 무성했었지요. 그걸 보면서 굉장히 무서워했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저렇게 커다란 고릴라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저만한 크기의 로봇이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오싹 끼쳤습니다. 아마 다른 아이들은 같은 이유로 흥분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문제는 디 로렌티스의 말이 몽땅 거짓말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그는 정말 실물 크기의 로봇을 만들긴 했어요. 하지만 그것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킹콩이 무역센터빌딩에서 떨어져 죽는 마지막 장면에서나 제대로 쓰이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기술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게 당연했지요. 왜 그런 낭비를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현존하는 기술보다 야망이 클 때가 많다더군요. 심지어 그런 부분에 꽤 밝은 남자인 조지 루카스도 <제다이의 귀환> 때 지하 감옥의 괴물을 실물 크기로 만들려 기를 쓰다가 포기했다니까요.

그럼 디 로렌티스는 나머지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고릴라 옷을 입은 릭 베이커가 나머지 궂은 일들을 다 처리했답니다. 가끔 클로즈업장면을 위해 따로 만든 팔과 다리가 동원되었고요. 이랬으면서도 로봇을 만들어 다 처리했다고 거짓말을 해댔으니 참 그 사람도 대단히 간 큰 사기꾼이에요. 올해 이 사람이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을 때도 그런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그렇다면 디 로렌티스의 킹콩은 정말로 사람들의 눈을 속일 만큼 대단한 사기였을까요? 글쎄요. 그걸 모르겠단 말입니다. 전 정말 어떻게 저런 걸로 사람들을 속일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암만 봐도 이 영화의 킹콩이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게 다 드러나는 걸요. 킹콩이 걸어다니는 곳이 세트라는 것도 너무 뻔하고요. 현대 관객에게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뻔한 조작입니다. 물론 특수효과가 덜 발달된 시대의 관객을 속이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속은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게다가 영화는 기가 막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던 오리지널 버전보다 기술적으로나 스펙터클면으로나 퇴보한 셈이었어요. 볼거리도 떨어졌지요. 원작에서 킹콩이 펼쳤던 화려한 액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실망했을까요? 티라노사우르스와 싸우고 엠파이어빌딩에서 전투기와 대결을 벌였던 친구가 반세기 뒤에 나타나서는 긴 뱀을 휘감고 돌아다니다 헬기에 손 몇번 휘젓고 끝이었다니. 그 영화는 정말 싸구려였어요.

이런 걸 생각해보면 피터 잭슨이 <킹콩> 리메이크를 포기한 건 정말 서글픈 일입니다. 이러다보니 이 프로젝트에 제동을 건 <고질라>까지 원망하게 되는군요. <킹콩>은 오리지널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지만 특수효과 지표 역할을 할 만한 제대로 된 리메이크 역시 필요한 영화입니다. 70년대와는 달리 요새 할리우드 장인들은 진짜 그럴싸한 킹콩을 만들 기술이 있으니까요. 당시 고릴라 옷을 입고 뛰었던 릭 베이커에게도 새로 기회를 주는 게 옳은 일일 테고요.

djuna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