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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칼을 대줘!
2001-06-28

인체를 변형시킨 비주얼표현 광고들

Playstation2 제작연도

2001년

제작 BDDP/TBWA,Paris

아트디렉터 Jorge Carreno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은 지금까지의 광고에서 인체의 부위에 돌출해 있던 게임버튼을 급기야 안구의 흰자위에 주사하는 엽기적인 시술을 감행한다.

밤새 게임을 하느라 충혈된 눈에 어른거리는 부호들은 이 게임의 몰입효과를 제곱으로 증폭시켜주고 있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은 몸에 딸린 그 어떤 것을 일컫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데카르트가

이 시대에 다시 부활한다면 말할 것이다. “나는 몸으로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땅의 전직 군인 박노항은 눈치 긁었다. 인간의 몸값을

매기는 일이 충분히 돈이 되는 사업임을. 그 비즈니스의 주고객은 스스로 불량등급으로 판정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의 몸을 등급으로

매기고 돈으로 환산하는 일의 선두에 연예오락, 방송, 광고가 서 있다. 드라마나 영화가 한편 뜨면 주연배우들의 몸값은 하루아침에 억대를 호가하게

된다. 출연료라는 이름의 몸값은 천문학적인 CF개런티로 부풀려져서 세간의 따끈따끈한 가십거리가 되곤 한다. 누가 얼마를 받았더라, 누가 얼마짜리

CF를 땄더라는 둥 마치 광고의 핵심이슈가 여기에 있기라도 하듯이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한 몸매’ 하는 아가씨가 어느날 미스코리아의 반열에 오르면 돈방석에 앉는 귀하신 몸이 된다. 권력적 지위가 외모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 그러니

모두들 몸매 만들기에 혈안이 안 될 수 없다. 쌍꺼풀수술, 콧대 높이기, 유방확대술, 안면근육 당겨올리기, 주름제거, 지방제거, 턱깎기, 광대뼈

깎아내기…. 몸 곳곳에 칼을 대기만 하면 완벽한 몸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판치고 있다.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것은 더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고행이 되고 있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노라고 큰소리 뻥뻥 치던 개그우먼이 알고보니 지방흡입수술 덕을 봤더라는 해프닝도 사실은

연예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에 사는 20대 미혼여성 10명에 2명꼴로 성형수술 경험이 있다는 통계도 보도되고 있다. 면접을 위해서,

맞선을 위해서,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서… 등등 성형수술의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생물학자 최재천은 말한다. “먹어도 먹어도 식욕을 포기하지 않는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고. 먹은 것을 후회하고 게워내고 쓸어내느라고 호들갑을 떠는 동물도 인간밖에 없다. 그런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몸만들기는 가장 돈되는 산업으로 번창할 것이다.

Biss

제작연도 2001년 제작 RG

Wiesmeier, Munich

아트디렉터 Susanne Schlotthauer

카피라이터 Anti Wendel

<비스>(Biss)라는 독일의 시사잡지는

이름의 뜻 그대로 독자를 물어뜯고(bite)

있다. 남녀의 얼굴에다 이빨로 깨문 자국을 남겨놓는 난폭한 수술로 비주얼 아트를 끝내고 있다. 사람들의 영혼을 할퀴는 이 잡지의 위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화술이 절묘하다.

몸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생산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던 전통사회에서 소비와 레저 중심의 사회로 판이

바뀐 것이다. 몸은 억제하고 옥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고가 지배하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확산도 몸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남성 중심의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학대하고 통제해 왔는지, 상업광고나 포르노그라피에서 어떻게 여성의 몸이 이용되고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인공장기의 개발과 사이버네틱스의 대두도 인체에 대한 신비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광고에서도 성형수술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그래픽을 통한 합성으로 인간의 몸은 자유자재로 변형되고 있다. 깎고 자르고 상처내고

끼워넣고 비틀고…. 표현목적을 위해서 인간의 몸은 얼마든지 왜곡되고 변형되고 타락해도 좋은 소품으로 전락한다. 고상한 표정과 우아한 자태를

포기하고 얼마나 몸값을 떨어뜨리느냐에 따라 광고의 값과 브랜드의 값은 그만큼 끌어올려진다. 올해에 만들어진 광고 몇편만 봐도 그 증거는 뚜렷하다.

Nescafe 제작연도

2001년 제작 McCann Erickson,

Milan

아트디렉터 Giorgio Cignoni

네스카페(Nescafe) 아이스 캔커피는

사람의 등뼈에 냉동마취술을 가하고 있다. 비주얼의 잔혹성은 말그대로 ‘등골이 시리도록 시원하다’는 메시지 의도를 적확하게 충족하고 있다.

Statoil 제작연도

2001년 제작 Leoville Leo

Burnett, Stockholm

아트디렉터 Goran Tell

카피라이터 Jan Bengtsson

스타트오일(statoil)은 윤활유라는 제품컨셉을 살리기 위해 인체의 관절부분에 그럴듯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삽입시술하고 있다. 엔지니어가 설계도면에

표기하듯 무릎에 갈겨놓은 공식을 소비자가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수치는 이 윤활유의 정교한 메커니즘을 암시하는 신뢰의 코드로 승화되고

있다.

이현우/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광고 칼럼니스트 hyuncom@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