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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어른 vs 지혜로운 아이들 <레모니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박혜명 2005-01-25

우울한 색채의 비주얼로 담아낸, 지혜롭고 용기 많은 고아 삼남매와 사악하고 끈질긴 어른의 안심할 만한 대결.

아이들은 슬프거나 무섭거나 잔혹한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정은 그럴 수 있어도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졌답니다’라는 결말이 없으면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수 없다, 고 어른들은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늘 해피엔딩을 들려준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은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스르르 감는다. 그럼에도 냉정히 끝을 맺는 이야기들이 있다. 새엄마의 저주를 받아 백조로 변한 열한명의 왕자들 중 유일하게 마법이 덜 풀려 한쪽 팔 대신 백조 날개를 달고 살게 된 막내 왕자. 선물로 받은 빨간 구두를 교회에 신고 갔다가 쉴새없이 춤추는 벌을 받아 결국 발목을 잘라내야 했던 가난한 소녀. 이것이 정말 끝인가 싶어 책장을 덮을 수 없는 잔혹한 이야기. 은 그런 짓궂은 의도로 쓰여진 소설 (Lemony Snicket’s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을 각색한 영화다(국내에서는 영화와 동명으로 출간됐다).

보들레어가의 삼남매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열네살의 발명광 바이올렛(에밀리 브라우닝), 책에 파묻혀 사는 독서광 클라우스(리암 에이켄), 밧줄도 끊어내는 이빨을 가진 네살배기 써니(카라 호프먼, 샐비 호프먼-일란성 쌍둥이가 2인1역을 맡았다)는 여느 때처럼 집 근처 해안에 나가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다 “집에 불이 났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부모님도 돌아가셨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다. 부모의 유언집행자 노릇을 하게 된 둔한 은행원 포 아저씨(티모시 스폴)는 아이들을 ‘아주 먼 친척’ 올라프 백작(짐 캐리)의 집에 데려간다. 외모만큼 성격도 괴팍한 올라프 백작은 자신의 진짜 목표가 보들레어가의 엄청난 유산임을 아이들에게 숨기지 않고, 후견인 자리를 뺏긴 뒤에도 능한 변장술과 잔꾀를 발휘해 아이들이 가는 곳마다 쫓아다닌다. 삼남매는 힘과 재능을 다해, 매번 자신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올라프 백작과 맞선다.

레모니 스니켓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대니얼 핸들러의 원작소설은 “만약 당신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펴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는 작가 자신의 냉정한 경고로 시작한다. 이 시리즈의 첫 세권 (The Bad Beginning), (The Reptile Room), (The Wide Window)을 영화화한 은 어슴푸레한 사람의 실루엣, 작업 중인 손과 타자기, 주드 로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작가가 드러나는 원작의 독특한 화법을 영화적으로 옮겼다. 등 팀 버튼의 괴이한 동화적 세계를 책임져온 릭 하인리히의 프로덕션디자인도 삼남매가 겪는 불행한 모험담에 시각적으로 음울한 감촉을 남기며 원작의 분위기를 좇는다.

삼남매의 처치를 한탄해 마지않으면서도 그것이 인생이며 따라서 이들의 삶에 희망이란 없을 것이니 그게 싫으면 일찌감치 책을 덮으라고 거듭 강조하는 태도는 원작과 똑같지만, 영화 이 중추로 삼는 것은 못된 계략을 가진 어른과 지혜롭고 재능 많은 아이들간의 대결 구도다. 새로운 후견인을 찾아 장소와 상황이 달라지는 원작 세권을 묶으면서 영화는 이것을 세번의 높은 난관과 기발한 아이디어와 속시원한 해결로 이해한 것 같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새로이 짜맞추고 변용해 만들어진 시나리오는 모험영화의 극적 클라이맥스를 세번 반복한다. 맨몸으로 연기하는 경우만큼이나 뭔가를 뒤집어쓰거나 덕지덕지 바르고 연기하는 경우가 많은 짐 캐리는 눈썹이 북실북실한 올라프 백작에서 파충류 학자의 조수로, 외다리를 가진 선장으로 장마다 모습을 탈바꿈하기에 더없이 꼭 맞는 캐스팅이며, 톰 행크스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아이들 영화에 어울리는 어른 배우다. 영화는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써니의 옹알이를 해석해주는 원작의 재치와 함께 짐 캐리만이 해보일 수 있는 코미디도 버리지 않는다.

대신 은 삼남매에게 문득문득 찾아오는 위태로움과 막막함의 정서, 삼남매의 불행을 안쓰러워하면서도 이를 집요히 전달하는 작가의 짓궂은 고집을 원작으로부터 조금씩 지운다. 보들레어가의 화재사건 미스터리를 깔끔하게 풀어내지 못한 건 좀더 나중에 지적할 문제다. 생각해보면 올라프 백작은 연쇄살인마나 다름없고 이야기의 뼈대는 그만큼 잔혹하지만 은 어른의 얄팍한 욕심을 이기는 아이들의 용기와 순수함 곁에 외로움과 절망이 주는 고통까지 깊이 파내진 못한다. 하긴 진짜 잔혹하고 슬픈, 그래서 이야기의 결말이 믿어지지 않아 책장을 차마 덮을 수 없는 동화로의 길은 온 가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에 부담스러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은 미국에서 지난해 12월17일에 개봉해 3천만달러가 넘는 입장수입을 거두며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프로덕션디자인

3200평짜리 호수, 100여종의 뱀

브래드 실버링 감독은 “의 프로덕션디자인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캐릭터”라고 말했다. 의 미술팀은 100% 세트촬영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를 위해 5개월간 400여명을 동원해 80여개의 세트를 제작했다.

핵심이 되는 세개의 프로덕션디자인은 1권 에 등장하는 올라프 백작의 저택, 2권 의 배경인 몽티 삼촌의 파충류 방, 3권 을 위한 조세핀 숙모의 절벽가 집과 호수다. 오스카 노미네이션 3회 경력을 가진 세트 데코레이터 셰릴 카라식()이 벼룩시장이나 중고품 교환장터에서 낡은 물건을 구해 갖다 채운 고딕풍의 올라프 백작 저택은 첫장의 볼거리. 삼남매가 파충류 학자 몽티 삼촌의 집으로 옮겨간 뒤엔 맹독성 코브라와 살모사, 방울뱀, 물뱀, 녹색나무 비단뱀, 정글카펫, 이구아나 등 100여종의 뱀과 파충류들이 모인 파충류실에 들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제작진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세트는 눈물샘 호수다. 조세핀 숙모의 집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절벽 아래의 호수는 CG가 아닌 760만리터의 물로 채워진 인공호수. 면적이 3200여평에 달하는 이 세트는 한때 보잉사의 우주왕복선을 제작했던 LA 다우니 스튜디오에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화재로 무너져내린 보들레어가의 저택, 암흑의 동굴, 파충류들의 정원 등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와 LA 다우니 스튜디오에 나누어 지어진 세트들을 총괄한 사람은 프로덕션디자이너 릭 하인리히다. 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에서 까지 네편의 팀 버튼 영화와 등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해왔다. 브래드 실버링 감독은 “할리우드 내에서도 가장 뚜렷한 스타일을 가진 몇 안 되는 프로덕션디자이너”라고 릭 하인리히의 재능을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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