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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싸움’, 진짜 한국 액션!”
2001-07-04

<신라의 달밤> 무술감독 김영규

프로필 | 1962년생 충남 금산출생 <주유소 습격사건>(1999) 무술감독 <7인의 새벽>(2001) 무술감독

<신라의 달밤>(2001) 무술감독 현재 무술인 모임 KAST와 (주)양산박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활동 <공공의 적>(강우석

감독), <훼밀리>(이정국 감독) 시나리오 검토중

액션을 담지 않은 영화란 없다. 그렇기에 모든 영화는 액션영화라고 주장하는 얘기도 이래저래 틀린 말은 아니다. <신라의 달밤> 무술감독

김영규(40)도 액션영화 찬양론자의 한 사람. 그에겐 ‘한국적인 액션’에 대한 남다른 신조가 있다. “가장 한국적인 액션이란, 정(情)과 한(恨)이

진하게 묻어나와야 해요.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혹은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상대도 되지 않는 싸움터로 향하는 게 우리네 정서잖아요.

논리정연한 걸 좋아하는 외국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안 되죠. 게다가 멋있게 폼잡고 서 있다 보면 어느새 뒤에서 치고 들어오고 간혹 이빨까지 무기로

사용하는 한마디로 ‘논두렁 싸움’이 진짜 한국적인 액션 아니겠어요.” 피를 보기 전에 적당히 끝내는 서양식 액션이나, 와이어를 타고 하늘 끝

간 데 없이 올라가는 중국식 액션에 익숙해진 관객, <신라…>의 강추대상이다. 경주의 달밤 아래에선 피를 보는 순간이 싸움의 시작이며,

주인공이라고 고상떨 수 있기는커녕 묵사발이 되도록 죽기 직전까지 두드려맞는다.

확실히 <신라…>는 기동(차승원)과 영준(이성재)의 쌈질 얘기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뚜렷한 개성만큼이나 서로 다른 액션 스타일을

선보인다. ‘Born to Be Violent’ 기동. 어쩌다(?) 선생이 된 그는 아이들을 패는 데나 정력을 낭비하다 마천수 일당을 만나

간만에 실력과시를 하는데, 그가 내지르는 주먹이란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단 몸이 상황에 자연스레 반응한 것일 뿐이다. 그의 액션 스타일은

김영규 감독이 내내 강조하던 ‘한국적인 액션’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기도. 싸움판으로 그를 이끈 건 보나마나 의리고, 일단 닥치는 대로 집어들고

싸우다가 슬슬 퇴로를 정해 빠져나오면서 결정적인 한방을 먹이고 등을 돌리는 건 그의 본능이 시킨 일이다. 그에 비해 한때는 범생의 길을 걷다

기동의 모습에 감화되어 깡패의 길로 들어선 영준은 단기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만들어진 프로의 실력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는 최후의 일격

뒤에도 머리 한올, 넥타이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단정하고 계획적인 액션을 구사하며 기동과의 차별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액션신이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만큼, 촬영 내내 크고 작은 부상이 잇따랐다. 그중 김 감독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주란(김혜수)을

구하기 위해 달려간 기동이 지게차로 적들을 제압하는 신에서 스턴트맨 한명이 크게 다친 것. 지게차가 그의 골반뼈를 으스러뜨린 것이다. 장면만은

무사히 살렸다. 매일 죽음에 상응하는 극한상황을 연습하던 이여서 그랬던가. 그는 병원에 실려가기 전, 담배 한대의 여유를 보이며 주변인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스턴트맨이 되고자 김 감독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바로 프로의 근성. 부상의 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는 현장에서 좋은 그림만 생각하고 몸을 위험 속에 내맡길 수 있는 그런 강단있는 자가 지금 그에겐 필요하다. 실력은 그 다음이다. 타고난

근성과 배짱이 있는 자라면 후천적인 노력에 의한 무술실력은 습득하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니까.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

사진 이혜정 기자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