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1923년 오사카로 건너가는 배에 몸을 실은 앳된 청년 김준평. 풍요와 희망의 새 세상을 꿈꾸는 해맑은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나면, 십수년 뒤 동일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광포해진 그(기타노 다케시)가 ‘집으로’ 귀환하던 그 밤으로 이어진다. 강간으로 아내 삼은 여인(스즈키 교카)을 저버리고, 친지의 피와 땀을 쥐어짜 돈을 모으고, 가족과 이웃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굴복시킨 사람. <피와 뼈>는 “아버지는 내 인생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고 단언하는 아들 마사오(아라이 히로후미)의 시선으로, 어디에서도 본 적 없지만,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 남자가 사는 법’을 소개한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개달리다>에서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최양일 감독이 6년을 투자해 양석일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는 재일동포 1세대의 파란만장한 일본 정착에 관한 이야기지만, 초점은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다. 김준평은 민족과 사상이 대두됐던 시대의 물결과는 상관없이 살아간 인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부터 재일조선인 집단에 이르기까지, 강간과 폭력과 착취를 통해 그들을 지배하고 군림했다. 유난히 아낀 애인에 대한 순정이나 공동체의 지도자라는 책임감 같은 의외의 면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의 악행을 상쇄해줄 정도는 아니다. 고독하고 초라해진 말년에도, 그는 회개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변하게 됐는지 ‘변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낯선 세상에서 말을 갖지 못한 소년이 욕망과 희망을 폭력으로 언어화한 것”이라던 감독의 변으로, 그를 아주 조금 연민할 수 있을 뿐이다.
<피와 뼈>는 고통스러운 영화다. 희극적인 면이 강했던 이전의 난투극과 달리, <피와 뼈>의 길고 잦은 난투극은 처절하고 잔혹하다. 견디기 힘든 ‘공공의 적’ 김준평의 마성은, 연출을 겸하지 않은 출연작은 14년 만에 처음이라는 기타노 다케시의 카리스마에 빚지고 있다. 설명되지 않는 김준평의 속내는, 무표정한 기타노의 얼굴과 닮은꼴이다. 구더기가 들끓는 돼지고기를 씹어 삼키던 그의 얼굴은, 비릿하고 끈적한 생존 본능에 자신을 내던진 괴물의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