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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의 풍광은 낭만적이었건만…
2001-07-05

영화 <테일러 오브 파나마>의 무대가 된 파나마 운하

미국에서 <누가 백만장자가 되길 원하는가?>라는 돈놓고 돈먹기식의 퀴즈프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식의 퀴즈프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생방송 퀴즈가 좋다>가 어느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영국에서는 아예 제목과 형식이 완전히 똑같은 퀴즈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상품으로 내건 퀴즈쇼가 인기를 끌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참 다양한 퀴즈쇼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딱 떠오르는 것만 해도 <장학퀴즈> <중학생 퀴즈> <퀴즈로 배웁시다> <퀴즈 아카데미>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알뜰 살림장만 퀴즈> 등 여러 개가 있을 정도다. 그런 다양한 퀴즈 프로그램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몇십년간 봐오다보면, 퀴즈에 자주 나오는 질문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운하의 이름을 맞추는 문제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개의 운하, 즉 파나마운하와 수에즈운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두 운하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 출제자들의 의도이기 때문. 다시 말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계를 관통해 지중해와 홍해·인도양을 잇는 것이 수에즈운하이고, 북미대륙과 남미대륙의 경계를 관통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은 것이 파나마운하라는 사실만 알면 별 어려움 없이 풀 수 있는 것이 바로 운하에 관련된 문제들인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 이름 정도는 알 정도로 두 운하는 세계적인 시설물들이다. 그중에서도 파나마운하는 개발이 시작된 120여년 전부터 최근까지 국제정치의 충돌점이 되어왔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존재다. 영화 <테일러 오브 파나마>는 그런 파나마운하를 둘러싼 미묘한 국가간의 긴장상태를 영화적 배경으로 잘 삼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파나마운하가 처음 구상되었던 것은 무려 470여년 전인 1534년,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로스 5세 때부터였지만, 실재로 운하를 만드는 공사가 시작된 것은 18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당시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운하의 필요성은 유럽 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었다. 이때를 틈탄 프랑스는 1881년 수에즈운하를 건설한 페르디낭 마리 드 레셉스라는 인물을 앞세워 파나마운하의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수에즈운하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험난한 지형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홍수와 더위로 인한 풍토병까지 만연하자 공사를 담당한 페르디낭의 회사는 1889년 결국 파산을 선고하게 된다. 그뒤 공사가 중단된 상태에서 프랑스는 누군가가 자신들이 진행하던 공사를 매입해주길 바랐고, 그 적임자로 미국을 꼽게 된다.

다행히 당시 콜롬비아의 속국이었던 파나마를 통한 물류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국은, 1902년 프랑스로부터 공사를 구매하는 법안을 통과한다. 그러나 공사지역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콜롬비아와의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은 파나마를 지원해 아예 콜롬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게 만든다. 당연히 그 과정을 두고 국제사회는 찬반양론으로 갈렸지만, 결국엔 미국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해서 미국과 협상권을 가지게 된 파나마였으니 당연히 미국이 원하는 대로 모든 조건을 받아들였고, 결국 전 국토의 5%에 해당하는 운하지역의 관리를 미국인 5명, 파나마인 4명으로 이루어진 파나마운하위원회에 맡기는 파나마운하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당연히 대표적인 불평등협약으로 서구 열강이 미개발국의 자원을 힘의 논리에 의해 점유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협약이 발효됨과 동시에 미국은 공사에 매달리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운하의 건설은 서인도제도에서 약 3만1천명 그리고 유럽에서 약 1만2천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약 10여년간 진행되고, 1914년 결국 종결되게 된다. 그렇게 완공된 파마나운하는 전세계 교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시설이자 해운교통의 요충지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파나마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보유한 국가가 된 것도 파나마운하를 이용하는 선박회사들이 배의 선적을 아예 파나마로 바꾸었기 때문. 이와 더불어 파나마운하는 운영주체에게 엄청난 통행료 수입을 안겨다주는 주요 수입원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1960년대부터 파나마가 그 통제권을 돌려받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무역통상의 핵심 요충지인 파나마운하의 관리권을 내놓을 경우, 경제는 물론 안보상에서도 심각한 위기가 초래할 것이라고 판단해 당연히 이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나 국제적인 여론은 미국편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파나마의 영토를 파나마가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을 다른 나라들이 곱게 봐줄리 만무했던 것. 결국 1977년 카터 대통령은 파마나운하의 관리권을 파나마에게 돌려주는 협상에 사인을 하게 된다. 그 내용은 미국이 1999년 12월31일까지만 관리권을 가지게 되고, 2000년 1월1일부터는 이를 파나마로 완전히 이관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미국 내에서 협상 결과에 불만족을 품은 여론이 들끓었다는 사실. 더욱이 홍콩계 허치슨 왐포아 그룹이 운하 양쪽에 있는 항구들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파나마 정부로부터 넘겨받게 되자, 중국이 사실상 파나마운하를 관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협상대로 미국은 2000년 1월1일을 기해 중립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부 미군을 남겨두고 파나마운하의 관리권을 완전히 이관했다. 그런 의미에서 파나마운하는 아직도 미국의 군대가 버젓이 서울 한복판에 부대를 운영하게 놔두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 파나마운하 특집

http://www.discovery.com/stories/history/panama/panama.html

파나마운하 공식 홈페이지

http://www.pancanal.com/eng/index.html

<테일러 오브 파나마> 비공식 홈페이지

http://www.geocities.com/bluehazemovies/tailorpanama/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