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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를 꿈꾸는 모험가들의 모험, <에쥬케이터>

얼치기 혁명가들, 사랑과 우정 안에 진짜 마그마가 있음을 배우다.

<에쥬케이터>의 주인공들은 분노한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티셔츠에 박혀 팔려나가는 이 시대가 싫다면서 분노한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로 오역되고,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갖기 위해 못 가진 자들을 더 못살게 구는 것에 분노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른바 혁명의 도래이다.

15년간 우정을 지켜온 얀(다니엘 브륄)과 피터(스티페 에르켁)는 젊은 혁명가들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여 그들은 제도의 불의에 반항하는 못 말리는 행동불사파다. 얀과 피터는 휴양지에서 돌아온 갑부들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서리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없는 틈을 타 빈집에 들어가 집안의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놓고, ‘너희는 너무 많은 돈을 가졌다’ 등의 메시지를 벽에 써놓는다. 그들을 지칭하는 말은 그래서 ‘에쥬케이터’다. 틈입하고 교란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성스러운 의식처럼 거행하고, 재미있는 놀이처럼 즐긴다. 그것이 그들만의 혁명의식 고취법이다.

피터의 여자친구 율(율리아 옌치)은 얀과 피터가 옹호하고자 하는 못 가진 자의 대표사례다. 고물차를 몰고 가다 벤츠와 사고를 낸 뒤에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는데, 수년간 끝도 없이 밤낮으로 일해야 겨우 그 수리비를 갚을 수 있는 지경에 몰려 있다. 율은 방세를 못 낼 정도로 어려워지고, 결국 건물에서 쫓겨나 남자친구인 피터의 집에서 얹혀산다. 그러면서 얀과 이웃하게 된다. 율은 피터 대신 점점 얀에게 마음이 끌린다.

피터와 얀이 에쥬케이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율은 우연히 문제의 벤츠 주인이 살고 있는 집 앞을 얀과 함께 지나게 되고, 자신도 그 집에 침입하여 에쥬케이터의 일원이 돼보고 싶다고 제안한다. 유쾌한 소란이 지나고, 그 집에 휴대폰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그들은 뒤늦게 알게 된다.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얀과 율은 집주인과 맞닥뜨리고, 돕기 위해 뒤늦게 피터가 오고, 그들 셋은 납치가 최선의 방책이라고 판단하여 깊은 산장으로 남자를 끌고 숨어 들어간다.

영화는 이때부터 다른 국면을 갖는다. 외부 정치 세계로 향했던 갈등은 세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애정 난기류로 탈바꿈한다. 게다가 그들은 잡혀온 이 부르주아 중년 남자가 과거 독일 학생운동의 지도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묘한 동질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들이 벌이는 납치극은 외부에 대한 관심에서 도리어 내부에 대한 이해로 돌아서는 계기가 된다. 잡혀온 갑부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며 마치 혁명의 시기로 돌아간 듯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하루하루를 즐긴다. 반면 세 사람은 사랑으로 갈등하고,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한 짓’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하산을 결심한다. 그리고는 남자를 풀어준다.

<에쥬케이터>의 인물들은 말끝마다 혁명 운운한다. 행동도 과격하다. 하지만 과격함을 보장할 만한 치밀함이 없고, 치밀함이 없어서 정리가 안 되고, 정리가 안 되다보니 오히려 귀여운 면이 보인다. 저예산 제작에 인공조명을 줄이고 핸드헬드를 많이 써서 촬영한 장면들은 실제 어떤 사상 의식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방식이 아니라 젊음의 착오 섞인 그런 생동감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또, 제기된 문제의 난점이 진지한 해결을 요구받는 지점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그런 영화도 아니다. 인물들이 제기하는 혁명의 당위는 무겁지만, 영화가 표현하는 수위는 그보다 훨씬 더 가볍다. <에쥬케이터>는 적당히 타협적인 과정 속에서 탄생한 적당히 발랄한 결과물이다. 2004년 칸영화제 경쟁작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에서는 떨어진다. 독일영화의 미래를 담보한다고 말하기에는 무안한 영화다.

오히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혁명가가 되기 전의 체 게바라를 다룬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미정’으로 전제함으로써 유쾌한 전조를 형성하려는 영화다. <에쥬케이터>는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는 자들의 결정론이 ‘수정’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유쾌한 전조를 찾으려는 영화다. 일종의 ‘모험기’로서는 동질성을 갖지만, 성찰의 방향은 반대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가 혁명가가 되기 직전 모험가의 모험을 다룬 영화라면, <에쥬케이터>는 혁명가를 꿈꾸는 모험가들의 모험을 다룬 영화이다. <에쥬케이터>에서 주인공들은 낭만적으로 미성숙하다. 그들은 모두 피터팬이다. 율조차 얀과 피터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세계를 사랑하고 즐긴다. 그래서 <에쥬케이터>는 정치적 피터팬의 낭만적 모험담이다.

감독과 배우들 소개

독일영화의 기대주들

“영화 <에쥬케이터>는 정치적 행동가이고자 했으나 단 한번도 그렇지 못했던 내 인생의 지나간 10년에 대한 영화이다. 나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개인적이 되어 집단적 역동성이 불가능해진 건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은 본래 반항하도록 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순수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사람들이 <에쥬케이터>를 보러와서 그 열정을 기억해내길 바란다.”

보도자료에 적혀 있는 감독 한스 바인가르트너의 변이다.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발랄하게 풀어낸 감독답게 약간의 치기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감독 한스 바인가르트너는 1970년생이고 원래는 의학공부를 했다가 90년대 이후 영화로 전향했다. <에쥬케이터>는 첫 번째 장편영화 <더 화이트 노이즈>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에쥬케이터>에서 얀 역할을 맡은 배우는 다니엘 브륄이다. 그는 한스 바인가르트너의 장편 데뷔작 <더 화이트 노이즈>에서 분열증환자 역을 했었다. 90년대 연기를 시작한 다니엘 브륄은 한국에서도 개봉했던 <굿바이 레닌>의 주인공 역을 맡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서 다니엘 브륄은 어머니에게 통일독일의 현재를 숨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들 역을 맡았었다. <에쥬케이터>나 <굿바이 레닌>처럼 저예산으로 긴장감 있는 이야기의 소극을 만드는 근래 독일영화들이 선호하는 배우인 셈이다. 그는 현재 영미권쪽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피터 역을 맡은 스티페 에르켁은 가장 먼저 이 영화에 합류한 배우였다. 그의 깡마른 체구와 뭔가 불쾌한 눈빛은 <에쥬케이터>의 젊은이들이 지닌 반항적인 이미지를 그려내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에서 여자친구 율을 친구 얀에게 뺏기지만 그는 다시 우정을 택하면서 그들만의 혁명으로 나아간다. 크로아티아 출생으로 1974년생인 스티페 에르켁은 <에쥬케이터> 외에도 2004년 베를린영화제 상영작 <더 맨>에도 출연하는 등 촉망받는 배우로 떠오르고 있다.

여주인공 율리아 옌치를 빼놓을 수 없다. 1978년생인 그녀는 2000년 들어 독일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에서 나치 체제하 반체제 활동을 했던 소피 숄을 연기하여 2005년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에쥬케이터>에서 보여준 그녀의 근심과 장난기가 교차하는 얼굴은 호소력이 있다. 그리고 지나간 혁명전사 하르덴베르그 역의 버그하르트 클로즈너가 있다. <굿바이 레닌>에서 서독으로 가버린 아버지 역을 맡아 지나간 세대를 대변했던 이 배우는 <에쥬케이터>에서 역시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고민이 촉발하도록 하는 과거에서 온 동기 부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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