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그의 연인 제인, 침팬지 치타, ‘아아아아아~ ’하는 특유의 고함소리를 들으면 달려오는 코끼리 떼, 밀림 사이를 나무줄기로 날렵하게 이동하는 쾌감, 모험심을 자극하는 스토리, 야성과 지성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주인공,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이국적인 배경에서 뛰노는 스펙터클... 남녀노소 누구나 익히 잘 알고 있는 ‘밀림의 왕, 타잔’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렇게 타잔은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그림책 등으로 전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고 있는 캐릭터지만, 국내에는 3년 전에야 원작 소설의 완역본이 나왔을 정도로 이 ‘타잔 월드’의 소개는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했다.
이에 DVD Topic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 SE>의 DVD 출시에 맞추어 타잔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특집 기사를 준비하였다. 본편을 보기 전에 타잔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미리 안다면 DVD의 감상도 더욱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DVD Topic)
에드가 라이스 버로즈가 쓴 원작 소설 ‘타잔(원제 Tarzan of the Apes)’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것은 1912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아니었고, 당시 미국 하위문화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펄프 매거진 가운데 하나인 ‘올스토리(All-Story)’의 지면에 실렸다. 독자들은 영국의 상류층에서 태어난 소년이 고아가 된 뒤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유인원과 함께 자라나 그들을 제패하는 왕이 된다는 환상적인 모험담에 열광했다. 또한 타잔이 된 그가 매력적인 금발의 처녀 제인을 만나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펼치는 로맨스에도 깊이 매료되었다.
버로즈는 ‘타잔’을 발표하기 1년 전, 올스토리 매거진을 통해 ‘화성의 달 아래서’로 이미 독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는데, ‘타잔’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특히 작중에서 타잔과 맺어질 것만 같았던 제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만다는 전개는 많은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타잔’이 대성공을 거두자 버로즈는 당연히 속편을 쓰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올스토리 매거진 측에서는 버로즈가 이듬해인 1913년에 완성한 ‘돌아온 타잔’의 게재를 거절하였다. 이에 그는 경쟁지에 작품을 팔아 빛을 보게 했으며, 이후 직접 원고를 들고 다니며 단행본화를 추진, 신문 연재를 거쳐 마침내 1914년, A. C. 맥클러그 앤드 컴퍼니 출판사에서 ‘타잔’의 첫 단행본이 나왔다. 이후 타잔의 인기는 부동의 위치에 올라섰고, 후속 시리즈도 계속해서 출간되기 시작했다. 타잔 원작 시리즈는 버로즈가 집필한 것만 24권에 이르며, 그의 사후 필립 호세 파머 등의 다른 작가들이 쓴 것까지 합치면 30권이 넘는다.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야 첫 편의 완역본이 나왔다.
천애고아의 기적과도 같은 성장담, 이국적인 밀림에서 벌어지는 장쾌한 모험, 인간미와 야성이 결합한 타잔의 호감도 높은 캐릭터성, 제인과의 로맨스. 한 마디로 ‘타잔’은 뛰어난 모험 소설이기에 앞서 모험 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버무려 담은 기막힌 영화감이었다. 이에 할리우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고, 원작이 발표된 지 6년만인 1918년, 첫 번째 영화인 <타잔(Tarzan of the Apes)>이 공개되었다. 상영시간 55분짜리 무성영화인 이 작품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급의 근육질 배우 엘모 링컨이 타잔 역을 맡았는데,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로즈는 ‘나의 타잔은 힘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캐릭터’라며 링컨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무성영화 시절 <타잔> 시리즈는 1929년까지 총 9편이 만들어졌으며, 엘모 링컨 외에도 진 폴라, 프랭크 메릴 등의 배우들이 타잔을 연기했다.
<타잔, 숨겨진 보물>에 출연한 조니 와이즈뮬러(왼쪽)
하지만,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궁극의 타잔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은 1932년 공개된 <정글의 왕 타잔(Tarzan the Ape Man)>에 등장한 조니 와이즈뮬러였다. 수영 선수 출신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했던 와이즈뮬러는 1미터 91센티미터의 장신에 문자 그대로 조각 같은 몸매의 소유자로, 버로즈가 말했던 타잔의 정의에 정확하게 걸맞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원작의 행간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이미지를 가진 그는 이국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이 모험 영화를 통해 대공황이라는 현실에 찌들었던 당시의 미국 관객들에게 달콤한 도피적 즐거움을 제공했다. <정글의 왕 타잔>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1948편까지 12편이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와이즈뮬러는 또한 타잔의 트레이드마크인 ‘아아아아아~’ 하는 고함 소리를 가장 멋들어지게 해낸 타잔 배우로 손꼽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처음으로 타잔의 고함 소리가 등장한 영화는 1929년의 <타잔 더 타이거(Tarzan the Tiger)>였으나 막 도입되고 있었던 토키 기술의 단점과 배우 자체의 목소리가 그리 좋지 않았던 탓에 현재는 ‘첫 시도’라는 의미 외에는 거의 잊혀지고 말았다. 물론 와이즈뮬러의 고함 역시 음향 기술자의 조작이 가미되긴 했지만, 그것이 ‘와이즈뮬러판 타잔’의 상징이라는 점만큼은 틀림없었다. 그의 출연작 가운데 을 비롯한 6편이 지난해 워너 브라더스를 통해 국내에도 DVD로 출시되었으니 관심있는 팬들은 찾아볼 것.
와이즈뮬러 이후에도 타잔 영화는 꾸준히 제작되었고,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타잔을 연기했던 1984년작 <그레이스톡 타잔(Greystoke, the Legend of Tarzan)>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이 영화는 <킹콩>(1976년)과 <마이티 조 영>(1998) 등을 통해 ‘유인원 특수분장의 대가’로 불리는 릭 베이커가 참여하기도 했다.
TV에서도 타잔의 활약은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처음으로 전파를 탄 작품은 1966년부터 2년간 방영된 <타잔>으로 여기서는 론 엘리가 주연을 맡았다. 1980년대 초반 국내에서도 방영된 바 있으며, 필자 역시 ‘T-A-R-Z-A-N’이라는 제목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흐르던 이 작품의 오프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6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정글의 왕 타잔(Tarzan, Lord of the Jungle)>이 많은 인기를 모았는데, 이 작품은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 실감나는 타잔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타잔의 이미지를 표방하며 울프 라슨과 조 라라가 주연을 맡은 TV 시리즈가 만들어졌으나 이미 PC(politically correct; 정치적으로 올바른) 운동이 한 차례 휩쓴 미국에서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 작품의 시청률은 신통치 않았다. 2003년에는 <스파이더맨>의 로라 지스킨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타잔과 제인(Tarzan and Jane)>이 The WB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는데, 배경을 현대의 도시로 옮기고 원작의 설정을 대폭적으로 수정한 파격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시즌을 채 버티지 못하고 종영되고 말았다.
하지만, 1999년에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타잔>이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함에 따라, 타잔은 다시금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하여 버로즈의 상상력 속에서 태어난 지 9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여전히 친숙하면서도 어딘가 동경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로서 살아있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즈 Edgar Rice Burroughs
1875년 미국 시카고 출신.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직업군인이 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카우보이, 광산 노동자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였다. 첫 작품을 집필한 것은 35세 때인 1911년으로, ‘화성의 달 아래서(Under the Moons of Mars)’라는 제목의 이 처녀작은 펄프 매거진인 ‘올스토리’에 실려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같은 잡지에 발표한 ‘타잔’으로 본격적인 인기 작가의 대열에 합류하였으며, 1919년에는 산 페르난도 밸리에 타자나 랜치라는 대저택을 짓기도 했다. ‘타잔’ 외에도 통칭 ‘바숨 시리즈’로 불리는 SF 연작(처녀작으로부터 파생)과 영화화되기도 한 ‘시간을 잃어버린 땅(The Land That Time Forgot)’ 등의 대표작이 있다. 1950년 사망.